미술관이란 또 하나의 미술
미술관이란 또 하나의 미술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4.04.1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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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 <자연미술관을 걷다>

 

[북데일리] “예술은 우러르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즐기기 위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내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규모나 명성이 아니라 소박하고 진솔한 아름다움이다. 규모와 명성을 뒤로하고 진솔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이 미술관 안내서가 봄맞이 민들레처럼 반가운 이유이다.” - 이주헌(미술평론가·아트스토리텔러)

이은화 <자연미술관을 걷다>(아트북스. 2014)에 대한 이주헌의 추천사다. 책은 라인 강변에 위치한 독일과 네델란드의 미술관 12곳을 소개한다. 19세기의 온천탕 호텔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쿠어하우스 미술관’, 어느 부자父子의 합작품인 ‘빌헬름 렘브루크 미술관’, 유럽 최대 탄광지를 재활용한 ‘출페어라인’, 현대미술을 이끄는‘ K20, K21 미술관’, 유럽의 숨은 진주 ‘홈브로이히 박물관 섬’ 등이다. 책은 각 미술관의 탄생 배경과 전시 프로그램, 작가와 작품에 얽힌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이중 독일 현대미술을 이끄는 K20과 K21은 뒤셀도르프에 위치해 있다. 미술관 이름치고는 특이하다. K20는 20세기 미술을, K21은 21세기 미술을 보여주는 미술관이다. 저자가 이 미술관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뛰어난 소장품 목록 때문이다.

“쿤스트잠룽은 비평가들에게 ‘비밀의 국립 갤러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정말 국가 기밀로 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탐이 나는 소장품 목록이다. 파울 클레, 키르히너를 비롯한 독일 표현주의 미술부터 피카소, 칸딘스키, 잭슨 폴록, 앤디 워홀, 요제프 보이스를 거쳐 게르하르트 리히터, 카타리나 프리치, 토마스 쉬테 등 동시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관의 이름처럼 20세기와 21세기를 대표하는 서구 작가들의 작품을 총망라하고 있다.” (p.168~p.169)

K21 전시장에서는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대중과 완전히 소통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추상적인 이미지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가카타리나 프리치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녀의 작품 ‘남자와 쥐’는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한 남자의 가슴 위에 커다란 생쥐 한 마리가 우뚝 서 있는 조각이다.

“침대며 이불보며 남자는 모두 하얀색인데 반해 생쥐는 검은색이라 강렬한 흑백 대비를 이룬다. 마치 악몽을 꾸는 것 같은 심정을 표현한 걸까? 꿈이라면 빨리 깨어나고 싶은 지독한 악몽이다. 그런데 의식은 돌아왔는데도 가슴과 온몸을 짓누르는 생쥐의 무게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누구나 한 번쯤 꿨을 법한 끔찍한 악몽이나 가위에 눌린 경험을 프리치는 이렇게 표현했다. 또한 중세 때는 사람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그의 영혼이 생쥐의 모습으로 떠나간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런 믿음을 염두에 둔다면 이 남자는 지금 혼자서 쓸쓸히 세상과 이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고독사’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181)

네델란드의 호허 벨뤼버 공원에 위치한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 가려면 공원 입구에서 20분 정도 자전거를 타야만 갈 수 있다. 이 미술관의 소장품은 16세기부터 현대미술까지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구미술관은 세잔, 반 고흐, 고갱, 르누아르, 쇠라 등 인상파 작품과 몬드리안, 피카소, 브라크 등 20세기 현대미술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미술관 건물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통로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관람객들이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을 자연스럽게 오가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신미술관 입구는 벽면 전체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관람객들은 숲을 통과해 미술관에 들어서면서도 여전히 자연과 단절되지 않고 또 다른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신관 내부에 자리 잡은 조각 갤러리 역시 한쪽 벽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어 실내의 조각 작품을 감상하다가 잠시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또 하나의 진정한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울창한 숲이 보인다. 인간이 만든 조각품과 조물주가 만든 아름다운 풍경화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p.297)

이외, 책은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숨은 진주 같은’ 미술관 정보를 제공한다. 자연 속에서 산책하듯 여유 있게 방문할 수 있는 곳들이어서 특별한 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좋을 듯 싶다. 책 말미에는 국내의 대표적인 자연미술관 4곳도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휴식과 명상을 원하는 미술 애호가들에게 좋은 정보가 될 만한 책이다. <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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