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상토론 뚱뚱한 여자는 사랑도 못해?
난상토론 뚱뚱한 여자는 사랑도 못해?
  • 북데일리
  • 승인 2006.08.0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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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여자는 사랑할 자격도 없다?

[난상토론]북데일리 시민기자 5인 소설 ‘내 머릿속의 개들’

“난 달수 씨가 나를 외면하고 가버릴 줄 알았어요.”

“왜요?”

“난 뚱보니까요.”

“그건 사실이죠.”

“맞아요. 그건 사실이죠. 난 미학적으로 교환가치가 형편없는 여자죠. 그래서 못 본 척 외면할 줄 알았다는 거예요. 누구든 날씬한 여자 옆에 서 있고 싶어 하니까요.”(본문 중)

제11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내 머릿속의 개들>(문학동네. 2006)의 주인공 고달수와 장말희가 나누는 대화 중 한 대목이다.

소설 <내 머릿속의 개들>은 뚱뚱한 여자를 ‘폐기처분’ 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두 남자의 위선에 확대경을 들이 댄다.

서른세 살의 백수 주인공 고달수가 대학 동창 마동수의 `악마적`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동수는 고달수에게 아내 장말희와 이혼하기를 원하니 그녀를 유혹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혼 구실을 만들어 보겠다는 얄팍한 계산에서 나온 꼼수였다. 고달수는 마동수가 제안한 ‘응분의 대가’가 탐이 나 그의 제안을 수락한다.

그러나, 고달수는 쉽게 장말희를 유혹하지 못한다.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엄청난 `뚱녀`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도 잘 통하고 재력도 갖춘 장말희이지만 그녀를 겹겹이 둘러싼 살만 보면 꿈틀 대려던 고달수의 욕망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실업문제’와 ‘외모지상주의’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 문제작 <내 머릿속의 개들>을 보다 진지하게 다뤄보기 위해 북데일리는 지난 4일 시민기자단 난상토론회를 열었다.

<아내가 결혼했다>에 이은 이번 토론회에는 북데일리 5인의 시민기자 김인숙, 양진원, 이진희, 원호성, 조한별 씨가 참석해 외모지상주의와 요즘 세대 사랑방식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펼쳐보였다. 그 생생한 현장을 지상중계한다.

대졸백수 고달수, 임시적 존재

“어느 날 대학 동창 마동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이날은 제가 존재A가 된지 일 년 육 개월 하루째 되는 날이었는데 존재 A란 ‘지금 실업자인 사람’을 뜻합니다. 저는 현대인은 오직 존재 A와 ‘조만간 실업자가 될 사람’을 뜻하는 존재B 두 부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새 직장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실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이스크림 체인점 모니터, 할인마트 생선매장 판매원, 돈 많은 뚱보 아줌마들 운동시켜주는 남자, 폐가전제품 수거원 등등, 모두가 임시직이었습니다” (p8)

이진희 “힘든 일은 안하려는 대졸백수도 많다고 하지만 고달수는 그런 타입은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해 상당히 많은 노력을 하거든요. 생각이 너무 많다는 점만 빼면 생존을 위한 사투도 불사하는 건실한 청년이죠”

조한별 “고달수는 시니컬한 남자에요. 백방으로 노력해도 취업은 안 되고 과외도 했지만 학생이 머리가 너무 안 따라가 줘서 그마저 그만두게 됩니다. 작가는 인간을 A와 B로 나누는데요. 고달수는 실업자인 부류 A에 속하는 시니컬한 타입입니다”

양진원 “‘모두가 임시적인 존재고 비정규적인 존재’라는 대목이 의미깊게 다가왔습니다. 지금의 사회는 ‘내가 남을 구조조정 해야 살아남고 또 역으로, 구조조정을 당하기도 하는 사회’라는 발언은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44사이즈 강요하는 사회

“변지혜는 매력 보따리, 아니 매력트렁크였습니다. 요컨대 저는 저만의 밤을 위한 여인으로 바로 그 매력 트렁크를 소유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이미 마동수의 내놓은 애인이자 예술 동업자였다는 것, 바로 그것이 가슴 아픈 저의 진실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장말희가 혐오스러운 뚱보라는 것, 그녀의 엉덩이, 그녀의 가슴, 그녀의 허리, 그녀의 종아리, 그녀의 허벅지, 그녀의 목덜미, 그녀의 입술, 그녀의 뺨, 그녀의 손가락, 그녀의 손목... 그것들이 전혀 소유하고 싶지 않다는 것. 바로 그것이 가슴 쓰라린 저의 진실이었던 것입니다”(p57)

이진희 “책은 날씬한 여자 변지혜와 뚱뚱한 여자 장말희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뚱뚱한 장말희에게 도무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고달수를 욕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남자라면 당연히 장말희 보다는 날씬한 변지혜 같은 여자한테 끌리지 않을까요”

원호성 “웹툰 ‘바나나걸’ 에서 ‘44사이즈’를 소재로 다룬 적이 있는데요. 한 옷가게 주인이 55, 66은 물론 77 사이즈의 아줌마가 몸빼 바지를 사도 ‘언니는 44사이즈야’ 라는 말로 손님들의 비위를 맞춘다는 내용입니다. 덕분에 모든 손님들은 기분 좋게 가게를 나가게 되죠.

최근 논란을 일으킨 ‘된장녀, 된장남’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 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쌩얼’ ‘S라인’ ‘44사이즈’ ‘된장녀’ 등의 신조어가 유행하는 온라인 세상은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현대사회의 축약본입니다”

이진희 “그렇죠. 명품가방에 테이크아웃 커피,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비싼 전공서적을 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은 일명 ‘된장녀’라 불리는 여성들은 겉치레에 집착하는 외모지상주의의 극단적 존재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조한별 “저는 오히려 사회가 외모지상주의에 둔감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달수는 장말희가 이야기도 잘 통하고 재산도 있는 것이 좋지만 결국 ‘당신의 육체는 추합니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진희씨 말대로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고달수를 쉽사리 욕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럴 수 있겠다’라고 공감 하는 측면이 강하죠”

양진원 “소설은 인간의 존재를 A와 B 둘로 나누듯 여자 역시 날씬녀와 뚱뚱녀, 둘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말희와 변지혜라는 뚱뚱녀와 날씬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누구를 택하겠냐고 묻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장말희를 선택할 남자가 있을까요?

이런 설정은 너무 극단적이어서 공감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전체를 100으로 본다면 전체의 70%는 통통하거나 뚱뚱한 여성이고 날씬한 여성은30%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30%는 모두 선택을 받고 70%는 모두 버림을 받습니까? 현실적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죠”

뚱뚱한 여자에게 성욕 느낄 수 없다?

“저는 술에 취할 때면 그녀와의 섹스를 상상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아,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키스를 하는 건 가능했지만, 젤리 덩어리 같은 그 거대한 육체를 그 기이하게 두꺼운 영혼의 집을, 그 탄소와 수소와 질소 덩어리를 껴안고, 그 물컹거리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그것은 가슴 아픈 벽이었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바위였고 깊은 강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전진 할 수 없었습니다”(p87)

이진희 “상대방에 대한 호감은 대화로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일단 외모에 의존 할 수밖에 없는 문제 같습니다. 특히 그게 여자라면 외모는 더욱 중요시 되죠. 고달수는 장말희와 이야기도 잘 통하고 정신적 교감도 나누지만 결국 육체적인 욕망은 느끼지 못합니다. 여자로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죠”

조한별 “그것도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남자들 대부분이 날씬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통통한 혹은 뚱뚱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도 봤거든요. 제 생각에는 마동수가 고달수에게 장말희를 유혹해 달라고 했을 때는 성적으로 정복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달수가 그런 강박증에 시달렸던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이진희 “덧붙이자면, 고달수가 장말희에 대해서 호감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여자의 과거의 사진을 보며 놀래면서 ‘당신 안에 이런 비너스가 존재하느냐’라고 묻지 않습니까. ‘장말희의 비너스를 꺼내 내가 한번 멋지게 사귀어 보자. 그리고 마동수의 뒤통수를 후려 치자’라는 일종의 보복 심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승부욕일 수도 있구요”

남자는 누구나 날씬한 여자를 원한다?

“난 달수씨가 나를 외면하고 가버릴 줄 알았어요“

“왜요?”

“난 뚱보니까요.”

“그건 사실이죠”

“맞아요. 그건 사실이죠. 난 미학적으로 교환가치가 형편없는 여자죠. 그래서 못 본 척 외면할 줄 알았다는 거예요. 누구든 날씬한 여자 옆에 서 있고 싶어 하니까요” (p71~72)

이진희 “남자들 대부분은 ‘예쁘고 어린 여자’를 원하죠. 한 대학선배가 생각나는 데요 그는 늘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자신이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라나요.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있던 그였지만 과도하게 느껴지는 그 자신감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여자도 외모를 중시하는 시대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자는 남자의 경제성을 중요시하고 남자는 여자의 외모를 중시하는 것이 차이점인 것 같아요”

원호성 “제 나이가 20대 중반이라 그런지 몰라도 주변에 남자들끼리 모이면 대화의 주요 테마가 여자로 집결 되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여자를 말할 때는 단연 예쁘고 날씬 한 것이 중요시 되죠. 머리가 얼마나 좋은가, 직업이 무엇인가는 거의 고려되지 않죠. 결혼적령기가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조한별 “날씬한 여자 옆에 서고 싶은 남자들의 심리는 일종의 ‘전시효과’와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쁜 여자와 다니는 남자는 ‘능력 좋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에 반해 여자는 조건 좋고 능력 많은 남자와 다녀야 ‘능력 좋다’는 소리를 듣죠. 외화 ‘섹스앤더시티’에서 봤던 한 일화가 생각나는 데요. 한 남자가 여자를 만났는데 모든 게 너무 잘 맞는 그녀이지만 친구들에게 소개 시키는 것만은 꺼려합니다. 여자 얼굴이 별로거든요”

이진희 “저도 봤어요. 여자와 함께 있던 남자는 우연히 만난 캐리가 ‘여자친구야?’ 라고 묻는 말에 명확히 대답하지 못하죠. 후일 남자는 캐리에게 ‘모든 것이 너무 좋다. 그렇지만 친구들의 표정이 어떨 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소개를 할 수는 없다’ 라고 말해요.

‘왜 당신의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시켜주지 않느냐’는 여자의 질문에도 남자는 떳떳한 이유를 대지 못하고 결국 두 사람은 깨지고 맙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별 씨가 말한 것처럼 여자의 외모를 통해 전시효과를 누리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조한별 “맞아요. 그런 내용이었어요. 대부분의 남자는 예쁜 여자를, 여자는 능력 좋은 남자를 데리고 가는 게 전시효과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저는 아니에요. 저는 잘생긴 남자를 데려가는 게 좋아요. (모두 웃음)”

`비만이 죄` 뚱뚱한 사람 구조조정?

“장말희와 제가 번화한 대학가를 산책할 때면, 우리는 우습고 혐오스러운 구경거리였습니다. 그녀와 제가 대학로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닐 때면, 우리는 실로 처참한 조소의 대상이었습니다. 잘 빠진 아름다운 젊은 커플들의 눈길에는 으레 우리를 경멸하는 조소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들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거의 무차별적으로 우리를 경멸하고 비웃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폭력이었습니다” (P85~86)

이진희 “뚱뚱한 사람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요”

김인숙 “저는 실제로 뚱뚱한 남자를 사귀어 봤습니다. 저까지 통통해서 늘 곰 두 마리라고 불렸죠. 그런데 어느 순간 ‘비슷한 것들끼리 다닌다’라는 주변의 조롱 비슷한 시선이 느껴지더군요. 물론, 제가 자존감이 낮았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치욕스런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고달수 역시 백수에다가, 성공한 대학동창 마동수를 보며 열패감을 느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진희 “굉장히 뚱뚱한 친구가 있는데 그애에게서는 조금의 열등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늘 연애를 하고 다양한 대인관계 속에서 즐겁게 사는 친구에요. 그녀가가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며 움츠려 드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결국, 비만이란 자존감이라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기도 하군요”

조한별 “뚱뚱하다는 게 죄가 될 수 있냐고 물으면 당연히 ‘무죄’라고 답해야죠. 그렇지만 뚱뚱한 사람을 향한 사회의 유난한 시선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단단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시선이 어떻든 자신만 떳떳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에요”

양진원 “소설이 다루는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구조조정’입니다. 구조조정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가장 중시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비만도 구조조정의 대상이라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날씬하게 구조조정 해야겠죠. 그런데 모두를 구조조정해서 날씬하게 만든다면 남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모두를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날씬한 사람만 남을 텐데, 그 날씬한 사람 가운데서도 또 서로를 비교하게 되지 않을 까요? 그러면 또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테고. 그럼 결국 가장 날씬한 사람 한 명만 남고 다 자살하거나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비만을 죄라 부르고, 뚱뚱한 사람을 구조조정 시킨다는 설정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아름다운 가공` 성형 천국, 대한민국

“저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어떤 주간지를 주워서 읽었는데, 그 기사는 미국의 어떤 비싼 여자 배우가 십억 원을 들여서 온몸을 가공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여자 배우가 십억 원을 들여서 배, 엉덩이, 가슴, 뺨, 입술, 귀, 종아리, 코, 눈가의 주름, 젖꼭지, 발가락 등을 ‘아름답게’ 가공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마동수가 찬양해 마지않는 구조조정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이삼 년에 한번 씩 자기 육체를 뜯어 고쳐왔는데 물론 그것은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자신의 교환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 였습니다”(p119)

원호성 “전신성형을 통해 미녀가 되는 여자 이야기 만화 <미녀는 괴로워>가 생각납니다. 흥미로운 것은 미녀가 된 후에도 주인공이 추녀 시절의 행동을 답습한다는 점입니다. 그녀에겐 추녀였을 때 카페에 가면 직원들이 늘 화장실 앞자리를 안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자는 미녀가 된 후에도 추녀일 때 안내 받았던 그 화장실 앞자리에 앉습니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참, 씁쓸한 이야기죠”

김인숙 “외모로 인해 상처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부분만 극복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습니다. 그 결과 성형수술, 지방 흡입 같은 선택도 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흠을 없애고 싶다는 마음인데,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양진원 “제 생각에는 오히려 미디어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외모는 결코, 어떤 경우에서든 최선의 가치로 간주 될 수는 없는 것이죠. 성형수술은 칼을 대는 건데 내 몸을 전부 조각조각내서 과연 누구에게 선택을 받고 싶은 것인지. 이것은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 같습니다”

뚱보가 되는 주인공 고달수의 `실험`

“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뚱보가 되기로 했습니다. 고독한 자신의 영혼을 보호하려고 뚱보가 된 장말희를 모방해보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또다시 실존적 정치경제학적 실험이었고 구조조정이었습니다. 그것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저를 상대로 하는 구조조정 이었습니다”(p 162)

이진희 “장말희를 유혹하는데 실패한 고달수는 결국 장말희처럼 뚱보가 되기를 선택합니다. 이는 장말희에게 ‘너도 내가 변한 것처럼 네 안에 있던 예전의 날씬한 모습을 꺼낼 수 있다’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역설적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원호성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처럼 고달수가 장말희에게 ‘나는 너를 이해해’라면서 끝났다면 그야말로 드라마겠죠. 실험성이 강한 소설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말이었습니다”

조한별 “소설에서도 잠깐 언급되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떠올랐습니다. 쏘냐에게 구원을 받는 라스콜리니코프와 달리 쏘냐가 될 수 있었던 장말희를 그런 식으로 망친 고달수는 ‘실패한 라스콜리니코프’처럼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죄와 벌>의 색다른 변주라고나 할까요?”

김인숙 “솔직히 고달수가 110킬로그램이 되었다고 해서 장말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뚱보가 된 후에야 장말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고달수를 보면서 그는 끝까지 사람의 내면을 보지 못하고 겉만 보는 사람으로 남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양진원 “고달수가 110킬로그램의 비만이 된다는 설정은 일반적인 의미의 ‘구조조정’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갖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구조조정과 반대인 ‘비만’이 된다는 엔딩은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고달수의 머릿속에 돌아다니며 그를 괴롭혔던 ‘개들’은 외모형적 조건만 중시하는 세상을 향한 작가의 반격이자 혐오감 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논의는 자칫 이슈를 위한 이슈만들기가 될 수 있다. 이번 토론회는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최소한 인정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함께 이슈에 대한 시각과 문제해결책은 공공의 선보다는 사회적 개인의 이익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 북데일리 시민기자 김인숙, 양진원, 이진희, 원호성, 조한별)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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