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험난한 역사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험난한 역사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2.09.1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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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용기> 중에서

[북데일리]<포스트 잇>아파르트헤이트는 ‘인종차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익숙한 표현이다. 원래는 아프리카너(남아프리 태생 백인)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로 악의 없이 그저 ‘분리’를 뜻하는 말이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에게 적용되면서 소수 백인이 다수 유색인종을 지배하는 정책으로 반세기 가까이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국제적 비난과 압박 앞에서 그 체제 자체가 붕괴됐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1948년 집권한 국민당이 아파르트헤이트라 이름 붙인 그 정책은 남아공에 사는 모든 사람을 인종에 따라 강제로 등록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특정한 인종만이 거주해야 하는 구역들로 각각 나누어졌다. 백인들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흑인들은 지금껏 살아오던 집과 마을에서 강제로 쫓겨나 도시 주변에 따로 마련된 흑인 거주 지역에서 살게 되었다.

수세기에 걸쳐 살아오던 농지와 목초지에서 쫓겨난 흑인들에게 가장 박토라 할 만한 땅을 분할해 주고, 그곳을 블랙스테이트(반자치 흑인 구역)라 불렀다. 나라의 절반이 넘는 인구를 국토의 10퍼센트 정도 되는 땅에 억지로 쑤셔 넣는 정책이었다. 그곳은 폐허였고, 생존 자체가 힘든 빈민굴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인종들 간에 거의 모든 사회적 접촉을 금하고 인종에 따른 공공시설 분리를 정당화했다. 또한, 교육 기준을 정해 인종에 따라 특정 직업을 갖는 것을 제한했고, 유색인종에게 노동조합 활동과 정치 참여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야만적인 인종 분리 정책에 대한 나라 안팎의 반발과 압박 속에서, 1989년 새로 취임한 클레르크 대통령이 1990년부터 1991년에 걸쳐 아파르트헤이트의 바탕을 이루는 법률들을 대부분 폐지함으로써 정책을 전환해 갔다.

그리고 1993년 신헌법에 따라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 잡단에 참정권이 부여되었고 1994년에는 다인종 총선거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의장인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남아프리카 최초로 흑인 정권이 탄생했다.

-<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용기>(우리교육.2012) 60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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