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과 '열혈 제자' 이야기
다산과 '열혈 제자' 이야기
  • 김현태기자
  • 승인 2011.12.1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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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삶을 바꾼 만남'... 과골삼천의 열정

[북데일리] ‘배움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좋은 스승을 만나는 일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말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학문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좋은 제자를 두는 일’이 된다. 이 관계에 꼭 맞는 쌍에 다산 정약용과 황상이 있다.

<삶을 바꾼 만남>(문학동네. 2011)은 두 사람의 운명적인 ‘인연’을 다룬 책이다. 황상은 다산이 가장 아끼던 단 한사람의 제자로 알려졌다.

책에 따르면 다산이 평생 키운 제자는 수없이 많았으나, 이들 중 끝까지 스승을 진심으로 한결같이 섬긴 단 한사람이 바로 황상이다. 다산 정도의 대가라면 당연할 수도 있다고 보겠지만, 제자 중에는 ‘창을 들고 방으로 뛰어 들어와 욕하고 헐뜯으며 등 돌린 자’도 있었다는 증언을 참고하면,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했음을 알 수 있다.

황상은 다산의 가르침을 받들어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1천수가 넘는 시집을 베껴 썼다. 지금이라면 모를까 그 나이에 ‘맨땅에 헤딩하듯’ 그런 작업을 했다는 사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 한다. 책 앞부분에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황상의 답이다.

‘내 스승인 다산께서는 날마다 저술에 몰두하시느라, 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지. 열다섯 살 난 내게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의 가르침을 내리시며서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네.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를 얻었느니라. 너도 이렇게 하거라.“ 그 가르침이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어제 일처럼 눈에 또렷하고 귓가에 쟁쟁하다네.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이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공부에 몰두하다 보니 복사뼈에 구멍이 났다, 한자로 과골삼천(踝骨三穿)이다. 스승이 몸으로 보여준 길을 제자는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과골삼천이란 단어와 이 일화 하나만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그러나 만남도 중요하지만 만남을 이어가는 일 역시 무엇에 비하랴. 또 다른 제자 이학래가 그 정반대의 교훈을 준다.

18년의 강진 유배 생활을 마치고 다산이 서울로 올라오자 많은 제자들이 그의 집을 기웃거렸다. 다산의 힘을 얻어 출세를 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때 다산의 강진 시절 수많은 책을 집필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운 이학래는 과거 시험에 도움을 주지 않는 다산에게 등을 돌리고, 추사 김정희의 문하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그 결과 황상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두 사람은 추사의 집에서 해후한다. 황상이 추사의 손님으로 방문한 참이었다. 반면에 이학래는 28년간 아무 성과없이 추사의 집을 드나들며 근근히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추사의 식객이었던 것이다.

“그의 얼굴은 세파의 신산에 찌들어 두 볼이 우멍했다. 반짝이는 눈빛도 더 이상 총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당히 추사의 손님으로 초대받아 장안에 시명(詩名)을 날리던 황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다소 처연하기까지 했다.” 486쪽

결국 두 사람의 극명히 대비되는 삶과 다산 그리고 황상의 운명적 만남은 학문에 대한 태도와 열정과 땀, 그리고 인연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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