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發 4세 경영 시대 본격 개막] ① 세습의 역습
[구광모發 4세 경영 시대 본격 개막] ① 세습의 역습
  • 우인호 기자
  • 승인 2018.07.04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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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상속·증여세법 상 4대 세습은 불가
두산, LG 제외한 삼성, 현대차, SK, 롯데, GS 등 모두 힘겨워
미래 방향에 경제 활력 달려 있어

LG 창업주 구인회의 증손자인 구광모가 지주회사인 ㈜LG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되면서 10대 그룹에선 처음으로 4세 경영이 가동됐다. 지난 2016년 100년 기업 두산이 4세 경영을 시작한 이래 두 번째다. 왕조의 세습과 흡사한 소유 및 경영 세습이 4세대로 접어들면서 한국형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어야 할 시점이 되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재벌 개혁’의 구호만 외쳐지고 있는 형편이다. 화이트페이퍼는 이에 바람직한 ‘한국형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논의에 첫 깃발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자산 기준 국내 대기업 순위. 대다수 대기업이 3세 경영 안착을 위한 작업들을 진행하는 와중에 LG와 두산이 4세 경영을 시작했다.
자산 기준 국내 대기업 순위. 대다수 대기업이 3세 경영 안착을 위한 작업들을 진행하는 와중에 LG와 두산이 4세 경영을 시작했다.

 

[화이트페이퍼=특별취재팀]

“현 상속·증여세법 아래서는 사실상 세습은 불가합니다”

식품 대기업에서 경영 수업 중인 2세 경영인은 웃으며 이처럼 말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로 아버지가 100%의 지분을 넘겨주면 세금 50% 내고 50%의 지분만 승계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대주주 할증까지 붙어 65%까지 세율이 높아질 수 있다. 세습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이 2세 경영인이 웃은 건 현실의 벽에 절망한 것을 허탈하게 표현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지만, 실제론 다른 방식, 달리 말해 편법으로 넘어갈 준비는 단단히 하고 있다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법이 예비 범법자를 키우는 셈이다.

중소기업은 다르다. 가업승계의 요건을 갖추면 오히려 세습을 세제적으로 지원한다. 세습을 통한 경쟁력 강화가 자본과 기술 축적에 가장 적합하다는 여러 나라에서의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세특례제한법 상 100억 원까지의 증여엔 세율이 10~20%에 불과하다.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기업은 세습해선 안 되고 중소기업은 세습해야 한다는 논리 균열이 심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 4세 경영 '가능할까'

국내 30대 그룹 대다수는 3세 경영 안착을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삼성의 경우, 3세 경영인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소유지배구조가 발휘는 되고 있지만 안팎의 도전에 직면 중이다. 삼성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 최대 주주인 이 부회장(지분율 17.08%)은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 출자구조를 통해 삼성 전체를 소유,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그룹 통합감독법’이 제정되면 삼성그룹 출자 단계 중 삼성생명 부분이 문제가 돼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금융권역별 규제(보험업법)에서는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던(한도 내 출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출자가 금융그룹 통합감독법에서는 자본을 더 쌓거나 팔거나 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 3세 경영인 정의선 부회장은 삼성보다 한 발 뒤쳐져 있다. 2000년 대 초 현대글로비스를 시작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소유지배구조 확립에 시동을 걸어 차근차근 준비했지만 올 초 화룡점정을 하지 못하고 후퇴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올 초 현대모비스(AS부품·모듈 사업만)와 현대글로비스를 합병하려고 했다. 합병 완료 직후 정 부회장의 글로비스 지분과 기아차, 현대제철 등이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을 교환하면 그룹 지분구조의 정점 현대모비스 최대주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장의 반대에 부딪힌 현대차그룹은 합병 추진을 포기했다. 3세 경영 안착도 아직 버거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SK그룹은 2세 경영인인 최태원 회장의 치세 속에 3세가 이제 막 경영 수업의 첫 발을 디딘 상황이며 롯데그룹은 창업주 시대가 막 저물고 2세 경영이 안착하는 와중에 벌어진 혈육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이라 두 그룹 모두 3세 경영을 논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LG, 두산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들도 이들 그룹의 상황과 비슷한 처지다.

대기업들의 이 같은 형국은 글로벌 기업으로 빠르게 크면서 상승한 기업 가치를 부(富)의 세대 이전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룹 내 비상장사를 통한 부(富)의 증식, 이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 등 그룹 내 핵심 인력들이 ‘편법’ 또는 신출귀몰한 신종 금융 방식 등을 동원해 부(富)의 세대 이전에 목멜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제 이마저도 힘들어진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결국 4세 경영은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의미다.

전직 대기업 비서실 출신 한 임원은 “선대의 지분 가치 1조원을 밑세대에게 물려주더라도 아래세대는 그 지분을 팔아서 개인적인 부의 축적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소유의 원활한 이전을 통한 경영권 확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 4세 경영 '해야 할까'

중소기업에 대해서 승계 증여 과세 특례를 둔 이유는 승계 시 책임 경영을 통한 자본 및 기술 축적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기업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3세, 4세 경영까지 내려가면 이 같은 책임 경영의식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인성의 문제로 인한 재벌 갑질 사례는 3·4세 경영의 그늘이다. 한진 3세 조현아 씨의 ‘땅콩회항’, 조현민 씨의 ‘물컵 투척’, 한화 3세 김동선 씨의 ‘변호사 폭행, 막말’, 대림 3세 이해욱 씨의 ‘운전기사 갑질’ 등 아버지 세대가 기업 경영을 하며 겪었던 어려움을 함께 하거나 보고 자란 2세와는 다른 DNA를 가진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개인적인 품성을 넘어서는 경영 능력이다. 재벌가 피가 흐르면 너도나도 경영에 참여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심각한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기업 초기 형제들이 경영에 집단으로 참여했던 GS, 두산 등은 대다수 후손들이 그룹 내 요직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형편이다. 본인 스스로 이룩한 것 하나 없이 일단 자리부터 차지하는 게 현실이다.

대기업 CEO를 오랫동안 역임했던 한 인사는 “철저하게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의사결정을 온전히 감내할 3·4세는 크게 많지 않을 것”이라며 “물려준다 하더라도 선대가 쌓아놓은 업적을 뛰어넘으려는 도전과 혁신의 DNA를 가진 자손을 찾으려는 진정한 경영수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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