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포도로 꿩 머리에 모자 씌우는 비법
건포도로 꿩 머리에 모자 씌우는 비법
  • 북데일리
  • 승인 2005.11.2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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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포도 196알로 꿩 머리에 모자를 씌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작가가 있을까? 그가 바로 천재 이야기꾼 로알드 달이다.

“일단 건포도 몇 알을 하룻밤 물에 담가서 오동통하고 촉촉하고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그런 다음 질 좋고 뻣뻣한 말총을 조금 가져다가 손가락 한마디 길이로 자르는 거야. 그런 다음 건포도 알갱이 속에 말총을 밀어 넣어서 건포도 양쪽으로 손톱만큼씩 삐져나오게 만들면 돼. 우선 땅에 작은 구멍을 파. 그런 뒤 종이를 구부려 원뿔형으로 만든 다음 컵처럼 뻥 뚫린 쪽이 위로 오게 해서 구멍에 끼워 넣어. 그리고 컵 안쪽에 끈끈이를 바르고 건포도를 몇알 떨어뜨리는거야. 동시에 주변 땅에 원뿔이 이어지도록 일렬로 건포도를 뿌리면 돼. 꿩이 그 흔적을 따라와서 건포도를 먹으려고 정신없이 머리를 구멍에 집어넣으면 다음 순간 모자가 씌워져 눈을 가리고 결국 아무 것도 못 보게 되지. 누가 생각해 냈는지 정말 기가 막히지 않아?” ( 로알드 달 단편소설 `세계 챔피언` 중)

로알드 달이 아니라면 상상 할 수 없는 기발함이다.

소설 <당신에게로>, <당신을 닮은 사람>, <찰리와 초콜릿공장> 등으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이야기꾼 로알드 달의 단편들이 <세계 챔피언>(강. 2005)이라는 이름으로 묶였다. 첫 번째 이야기 ‘클로드의 달’에서 클로드가 친구 고든에게 알려주는 꿩 머리에 모자 씌우는 방법에서도 특유의 위트와 상상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꿩 머리에 모자를 씌우는 방법이 있다면, 꿩을 잠들게 하는 수면제를 먹이는 방법도 있다.

“건포도를 잊은 모양인데, 자 들어봐. 우선 건포도를 구해야 돼. 건포도를 물에 담가서 불려. 그런 다음 면도칼로 한쪽에 조그만 흠집을 내고 속을 약간 파 놓는 거야. 그리고 빨간 수면제 캡슐을 열고 가루를 그 속에 쏟아 넣어. 그러고 나서 바늘 하고 실로 아주 꼼꼼하게 그 구멍을 꿰매면?” (본문 중)

이와 같이 로알드 달의 작품은 ‘불가능’을 ‘가능’ 으로 만들고, 미지의 대지에서 로케트를 쏘아 올리는 황홀경을 보여준다. 12편의 주옥 같은 단편들은 각각의 다른 느낌으로 읽는 재미와 상상하는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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