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가 부추긴 `빈곤의 역사`
제국주의가 부추긴 `빈곤의 역사`
  • 북데일리
  • 승인 2008.03.04 0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체 썩는 악취가 대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시체를 운반하던 사람들이 화장용 장작더미 앞에 쓰러져 있었다.”

[북데일리] 신간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이후. 2008)에 묘사된 1900년 초 인도 구자라트의 풍경이다.

저자 마이크 데이비스의 말에 따르면 당시 구자라트는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가뭄, 기근, 페스트, 콜레라가 동시 다발적으로 덮쳤기 때문이다. 어떤 병원에서는 사망률이 90퍼센트였고, 한 캠프에서만 4일 동안 3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구자라트 내 브힐족의 경우 1901년경에 주민의 1/3이 사망했다.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은 나 몰라라했다. 오히려 경멸감을 내비쳤다. 한 영국 관리는 구자라트의 처참한 모습을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구자라트 주민들은 나약하다. 궁핍에 익숙하지 않으며 손쉽게 좋은 음식을 얻어왔다. 그들은 무더운 날씨 속에서 일해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노동하는 습관을 가져 본 적도 없다. 가까이서 자세히 관찰한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체질적으로 그런 능력이 없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 가장 가난하다는 집단에서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평생 동안 손에 도구를 쥐어 본 적이 없다.”

이는 특정 영국인에 한정된 생각이 아니었다. 대체적인 인식이 그랬다. 급기야 구자라트 주민들에 대한 수탈 강도를 높이기까지 했다. 세금 인상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에 부유한 농민을 뜻하는 파티다르들은 저항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오히려 토지를 몰수당하며 쫓겨났다.

이 같은 무관심은 구자라트에 그치지 않았다. 인도 전역에 재앙을 불러왔다. 인도는 말라리아 사망자를 빼고 1899년과 1900년에 영국령 인도에서 125만 명의 기근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이는 최소 수치일 뿐이다.

로메시 덧이 이끌던 인도인 경제학자들은 서너 배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구통계학자 아룹 마하라트나의 경우 최근 재구성된 통계를 바탕으로 사망자가 300만 명에서 440만 명이라고 믿는다. 심지어 천만 명이 죽었다고 말하는 아서 루이스 같은 학자도 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방치’ 된 채 죽어나간 건 분명한 사실이다. 저자는 이를 인재로 규정한다. 영국이 ‘봄베이 관할구 기근 보고서, 1899년~1902년’에서 “초기부터 광범위하게 무상으로 구제했더라면 초과 사망자 수의 상당수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시인했듯이 말이다.

이처럼 책은 제국주의가 부추긴 세계의 빈곤에 주목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야만이 초래한 끔찍한 결과가 섬뜩하다.

(사진제공=이후)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