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돼" 비명 질렀던 클래식 명곡
"말도 안돼" 비명 질렀던 클래식 명곡
  • 북데일리
  • 승인 2008.01.0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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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그가 교향곡 ‘봄의 제전’을 초연할 때의 일이다.

두 번째 단락이 시작하면서 갑자기 관객들이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객석의 통로에서 비명을 지르는 이도 있었다. 나이든 여성들은 작곡가에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 발레리나들에겐 모욕의 말이 날아들었고, 지팡이를 휘두르는 노인도 보였다.

급기야 경찰이 출동했지만,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음악이 멎고서야 소동은 끝이 났다. 다른 곳도 아닌 공연장에서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걸까.

답은 스트라빈스키가 시도했던 새로운 형식에서 찾을 수 있다. ‘봄의 제전’은 기존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교향곡으로 당시 관객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였다. 교향곡의 전통을 모욕하는 기악 편성, 현악기의 무시, 무질서한 불협화음의 향연,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가득했던 것.

때문에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박자로 연주되는 협화음의 집합이 바로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청중들은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지호. 2007)의 저자 조나 레러는 이 사건을 과학적으로 해석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인간 뇌의 청각피질은 소음 패턴을 반복적으로 들으면 기억을 한다. 이때 청각피질이 재구조화되고, 다음에 그 패턴을 들을 때 더 쉽게 인식한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음악적 패턴들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뇌 속에 촘촘하게 짜여 들어간다. 이는 음악에 대한 예측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빛의 제전’은 새로운 패턴으로 당시 사람들의 뇌에 자리 잡은 음악적 기대들을 체계적으로 해체했다. 당연히 무의미한 소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것으로 느껴졌다.

지금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고전으로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뇌에 적응이 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패턴이었지만 익숙해지자, 결국 아름다움으로 다가온 것.

이 밖에도 책은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세잔,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 버지니아 울프 등의 예술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예술과 과학의 접점을 찾는 시도가 흥미롭다.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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