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투영한 이상한 나라 `박성원의 소설`
현실 투영한 이상한 나라 `박성원의 소설`
  • 북데일리
  • 승인 2007.09.0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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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우리는 세상을 살고 있는 범인(凡人)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을 찬찬히 훑어보면 참 불합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 뿐더러 조롱하듯 아이러니한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아무래도 우리들이 살아나가기에는 조금 버거운 세상살이가 아닌가합니다.

세상 곳곳에는 의지와는 상관없고, 이성이나 논리를 앞세워도 해결될 수 없는 일이 속속 고개를 들고, 그런 일 앞에서 우리는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인타라망(因陀羅網)’을 아세요? 불교에는 하늘을 주재하고 천둥과 번개를 부리는 신인 인타라(因陀羅)가 있습니다. 인타라가 사는 궁전을 장식하고 있는 보석 그물이 바로 ‘인타라망’인데요. 이 그물은 그물코마다 보석구슬이 붙어있어서 그 구슬에 다른 보석구슬의 그림자가 비치게 되고, 그 각각의 그림자 속에 다른 모든 보석구슬의 그림자가 비쳐 반짝반짝 빛나게 됩니다.

세상도 ‘인타라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보석구슬마다 비친 세상의 모습은 다각도로 빛을 받아 영롱하게 서로를 반사함으로써 세상을 밝히고 다채로운 빛깔을 내게 됩니다. 하나가 하나를, 여럿이 하나를 비추고, 또 하나가 여럿을 비추니 말입니다. 실로 엄청난 인과관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 아름다울 듯하죠?

하지만, 이 인과관계를 비극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있는 소설가가 있어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한 사람의 웃음이 다른 사람의 피눈물이 되는 세계가 바로 ‘인타라망’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제가 이번 주 소개해드릴 매력적인 소설인 <우리는 달려간다>(문학과지성사. 2005)는 박성원의 세 번째 단편소설집입니다.

총 아홉 편의 단편들이 묶여 있습니다. 그 중 ‘긴급피난-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2’와 ‘인타라망-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5’는 <우리는 달려간다> 중에서 가장 인상깊게 접했던 단편들입니다.

두 개의 소설은 이어져 있으므로 반드시 순서대로 읽어보셔야 합니다. 내용도 충격적이거니와 사건을 재구성해 보여주는 솜씨, 그리고 작가가 쳐 놓은 촘촘한 인과관계의 그물망까지. 읽다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박성원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기이하고 모호하게 뒤틀려 있습니다. 어찌 보면 비루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괴이하기도 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잘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서 지나쳤을 지도 모를 법한 인물들입니다.

읽으면서 인물들의 모습이 비록 겉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유체가 이탈하여 둥둥 떠다니는 우리 의식의 실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이라 생각하고 읽어나가다 보면, 약간의 비틀림이나 실수들이 만들어내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매번 뒤통수를 가격합니다. 다 읽고 나서도 풀리지 않는 몇 개의 의문들로 인해 한참을 생각하다 그냥 멍한 상태가 돼 버리기도 하지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독자보다 분명 한 수 위입니다.

어떤 기사에서 박성원이 “가방은 물건을 넣고 다니는 도구인데, 그게 루이비통이 돼 버리면 어떤 사람은 흠집 날까봐 자주 들고 다니지도 못하더라. 이렇게 진짜와 가짜가 역전되는 현대를 문학으로 옮기려는 것”이 자신의 소설관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에게 있어 소설쓰기는 삶의 진정성을 찾는 작업이라고 보아야겠죠. 박성원의 소설들을 읽고 그의 소설관을 다시 떠올리신다면, ‘아하, 참말 그렇구나!’ 하실 겁니다.

박성원의 소설은 읽다보면 낱말들이 간혹 생경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고유어들을 살려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꽉 짜여진 문체와 매끄러운 구성이 소설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하지만, 가끔씩 멈춰 작가가 살려 쓰는 고유어들의 뜻이 궁금해 밑줄을 긋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귀찮으시더라도 꼭 사전을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절로 살려 쓰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드는 낱말이 분명 있으실 테니까요.

결코 가볍지 않으며, 마치 장르소설을 읽는 것처럼 몰입을 재촉하는 <우리는 달려간다>. 입에 맞으시는 분들은 그의 첫 번째 소설집 <이상(異常),이상(李箱),이상(理想)>(문학과지성사. 1996)이나 그 유명한 ‘댈러웨이의 창(窓)’이 있는 <나를 훔쳐라>(문학과지성사, 2000) 역시 읽어보시면 분명 흡족한 기분이 드실 겁니다. 추천!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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