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한 색채의 세계에 ‘풍덩’
변화무쌍한 색채의 세계에 ‘풍덩’
  • 북데일리
  • 승인 2007.08.1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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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크레파스가 있다면 지금 한 번 열어보세요. 어떤 색이 들어있나요? 물감으로 대신해도 좋습니다. 하얀색, 빨간색, 검정색, 초록색, 하늘색, 살색 등 다양한 색이 들어있겠죠?

작가 고미타로의 다른 작품이 형태에 대한 발상법을 보여준다면, <색깔그림책>(달리. 2007)은 특유의 재기발랄함으로 고정관념에서의 탈출을 시도합니다. <색깔그림책>은 빨간책, 까만책, 하얀책, 노란책, 갈색책, 초록책. 총 6가지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6가지 색깔 책 중 빨간책을 열어볼까요? 첫 장에는 늘씬한 플라밍고 두 마리가 나옵니다. `플라밍고`라고 친절하게 적혀 있군요. 헌데 저 밑에 작은 글씨는 뭐라고 적은 거죠? "까마귀라면 까만 책, 오리라면 하얀 책". 재치만발 고미타로의 조언대로 까만 책을 열어보면 정말 까마귀가 있답니다. 하얀 책에 오리가 있는 건 물론이지요.

하늘은 꼭 파란책에만 있어야 할까요? 붉게 물든 노을은 빨간책이랍니다. 날이 지면 까만책이겠죠? 머리카락은 까만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노인의 백발은 하얀책에 있는 걸요.

변화무쌍한 색채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저자는 <색깔그림책> 출간에 앞서 출연자들을 정하는데도 꽤나 고심했던 모양입니다. 그 비화를 소개할까 합니다.

"내가 잘 아는 흰곰이 말하기를 자기는 흰곰이 아니라 그냥 곰이란다. 곰은 본래 흰색이 당연한 것이고, 사람들이 보통 `곰`이라고 부르는 것이야말로 곰의 특별종이므로 `검은 곰`이라 불러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물원의 검은 곰에게 전화해 보았더니 "장난하는 거냐? 그 녀석들이야말로 이상한 녀석들이야. 북극 같은 곳에서 살더니만 언제부턴가 색이 바랜 거지. 곰이라면 우리들이 표준이라고. 그 녀석들은 어디까지나 흰색 곰, 흰곰이야."라고 말한다."

이 에피소드는 곰은 하얀색일수도, 검정색일수도, 회색일수도 있다고 생각해보게 합니다. 홍차(紅茶)조차 붉은빛만을 띄지 않고 녹차(綠茶)라하여 녹색 빛만을 띄지 않으니까요. 사실 색깔에 대해서도 많은 고정관념이 존재합니다.

`하늘색`, `살색`같은 색깔명은 얼마나 구태의연한지요! 이런 이름 때문에 많은 아이들의 스케치북에는 오로지 밝은 파랑의 하늘과 창백한 피부색만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한편 빨간책, 하얀책, 까만책이 대상이 가지는 다양한 색상에 눈뜨게 한다면 노란책, 갈색책, 초록책은 고유의 색상을 지닐 때 가장 아름다운 존재들을 보여줍니다. 노란색은 달걀색깔, 노란색은 바나나 색깔, 노란색을 가을철의 은행잎 색깔, 이런 식으로요.

특정색상이 대상의 특징에 강하게 작용하는 것들은 그 색을 달리표현하면 거부감을 갖게 합니다. 한 예로 수박을 들 수 있습니다.

품종계량에 의해 노란색을 띈 수박이 있다고 합니다. 푹푹 찌는 여름. 이가 시리도록 시원한 수박이 먹고 싶을 때 냉장고에서 갓 꺼낸 노란 색 수박!! 아, 이건 정말 맥 빠지는 그림이죠. 누가 뭐래도 수박의 속살은 빨간색이어야 시원한 여름의 맛이 살아나니까요.

이렇듯 색채는 어떤 존재를 더 빛나게 보이게도 하고, 그 존재의 변화를 감지하게도 합니다. 그 이치를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깨닫게 하니 고미타로는 걸출한 작가임에 틀림없습니다.

<색깔그림책>은 누구나 색을 접할 때 벌거벗은 눈이 되도록 합니다. 색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죠. 사물인지와 색깔인지로 넘쳐나는 책들 가운데 고미타로의 작품이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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