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제거할 것이 없을 때 완성.. 천양희 시인의 글쓰기
글은 제거할 것이 없을 때 완성.. 천양희 시인의 글쓰기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1.17 0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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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수업> 천양희 글 / 다산책방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구름자락이 바람결을 따라 흩어지는 걸 보니 가을이 시작됐나 보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글쓰기에도 속도가 붙는다. 마음결이 바람결처럼 흐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글(시)에도 결이 있다.” (p.54)

글쓰기에 대한 짤막한 글인데도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 시인의 글이어서 그럴까. ‘정원 한때’ 등의 시로 등단한 천양희 시인은 시를 쓴지 50년이 됐다. <작가수업>(다산책방. 2015)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과 문학적 체험, 시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에게 왜 시를 쓰느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잘 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잘 산다는 것은 시로써 나를 살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시와 소통할 때 가장 덜 외롭다.

나는 왜 시를 쓰는가, 쓰려고 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마다 시를 쓴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하게 된다. 시인은 일상 속에서도 일상 너머를 봐야 하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상식적 감각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시도 삶도 바뀌게 된다.” (p.94)

이어 그녀는 말한다. “삶의 약동과 비애가 한 줄기임을 말해주는 것이 시의 근원”이며, “심장의 고동소리와도 같은 것, 가장 중요하면서도 얼핏 보면 있는지 없는지도 감지하기 힘든 그것이 시다.” 그녀 역시 글쓰기에는 특별한 전수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녀가 전하는 조선시대 이건창의 창작법은 이렇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찢어버리는(지워버리는) 기본 방법이 있을 뿐이다. 글은 덧붙일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제거할 것이 없을 때 완성되는 것이다. (중략)

평범한 사실의 나열은 글이 아니다. 특징적인 점을 포착해 집중적으로 묘사해야만 성공한 작품이다. 이목구비를 그릴 게 아니라 그 눈썹과 뺨의 세밀함을 살려 그 사람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를 드러내라.” (p.56)

그녀는 왜 시를 쓰는가를 생각할 때마다 왜 시인으로 살아는가와 연관지어 생각한다.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할 때에도 시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한다. 특히 문학을 삶의 중심에 놓고 시인이 되려는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말이 비장하다.

“시인이 되려면 새벽하늘의 견명성같이, 밤에도 지지 않는 새같이, 잘 때에도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같이, 몸 안에 얼음 세포를 가진 나무같이, 첫 꽃을 피우려고 이십오 년이나 땅속에서 기다리는 사막만년청풀같이, 일 킬로그램의 꿀을 찾기 위해 오백육십만 송이의 꽃을 찾아가는 벌같이, 성충이 되려고 천 일을 물속에서 견디며 스물다섯 번 하물을 벗는 하루살이같이, 얼음 구멍을 찾는 돌고래같이, 하루에 칠십만 번씩 철썩이는 파도같이 제 스스로를 부르며 울어야 한다. 자신이 가장 쓸쓸하고 가난하고 높고 외로울 때 시인이 되는 것이다.” (p.125)

이와 함께 그녀는 시의 완성을 위해서는 “마음 공부, 자연 공부, 책 공부, 인생 공부, 사랑 공부 등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137쪽)

시인에게 시는 “내 삶에서 끊임없이 나를 충전”시켜주며, “갖가지 매혹으로 나를 사로잡기도 하고 때론 환멸을 주기도 하는 애인 같은 존재”이다. 그러면서 “나를 새롭게 해주고 나를 밟게 해주며 나를 철들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이다.(151쪽)

책에서 시인은 수많은 문학작품들을 언급하며 시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들려준다. 50년간

치열하게 시를 써온 노 시인의 글은 시인 지망생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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