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교회` 촌놈목사 애잔한 `삶의 속살`
`망할 교회` 촌놈목사 애잔한 `삶의 속살`
  • 북데일리
  • 승인 2005.09.2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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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고 적게 살고만 따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남은 날을 기쁘게 살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 즐겁게 사는 것보다는 기쁘게 사는 것이 더 좋다. 자기만을 위해 살면 즐겁다. 남을 위해 살면 기쁘다… 지금까지 기쁘게 살지는 못했다. 남는 날을 될 수 있으면 기쁘게 살으련다. 기쁘게 사는 것도 남이 도와주어야 한다. 기쁨도 받아 주어야 한다.”(`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 가운데)

임락경(60). 그는 ‘망할 교회’ 목사였다. 화천에서 교회를 손수 개척했지만 그것을 다른 목사에게 넘기고 장애인들을 따로 모아 그 옆에 ‘시골교회’를 새로 지었다. 그 이유는 장애인들이 몸이 불편하여 예배 보러 가기가 힘든 까닭도 있지만, “가정 화목해라, 부모 공경해라”는 설교 내용이 갈 곳 없는 그들을 더욱 슬프게 했기 때문이다.

책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 (2005. 삼인)에서 그는 “장애인들은 없어져야 하고 그러면 교회가 망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 교회 이름을 ‘망할 교회’로 정했는데, 교회 서기가 성질을 내면서 받아 주지를 않아 하는 수 없이 ‘시골교회’로 해 놓으니 장애인들만 늘어나고 망하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떤다. 한 마을에 교회가 둘 있는 것이 싫어서 십자가도 세우지 않은 그는 그렇게 화천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25년 동안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다.

그는 열 살 때 앞으로 살날을 세어 보다가 “나는 농사짓겠다, 사회에서는 반장도 않고 교회에서는 집사도 안 하겠다”고 결심했단다. 허가 없이 ‘복지시설’을 운영하려니 “목사 직함도 어쩔 수 없이 정부 인가 없는 신학교에서 ‘야매’로 땄다”고 짐짓 자랑스레 얘기한다. 또 그는 “공부를 더 했으면 하마터면 거들먹거리고 살다가 지옥 갈 때나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책을 통해 고백했다.

이른 나이에 뜻을 세우고 봉사의 길로 들어선 임 목사는 젊은 시절부터 결핵 환자들, 해고 노동자들,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 왔다. 근처 병원에서 새벽같이 음식물찌꺼기를 받아다 붕대와 살덩이를 골라낸 뒤 죽을 쑤어 돼지를 치고, 매일 새벽 양젖을 짜서 끓이고 식혀서 몰래 새벽에 배달하여 몸 불편한 이들의 생계를 꾸린 이야기는 고생스럽게 들린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나는 아직 못 느껴 보고 말만 들었지만 기쁨이란 자기와 자기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을 돕는 데에 있다”며 “나는 그저 농사짓고 집 지으며 산 것 밖에 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참 지혜를 가르쳐 준 큰 스승이 여럿있다. ‘동광원’을 짓고 병자, 과부, 고아, 장애인들과 더불어 옷 한 벌 양말 한 켤레 없이 살아 ‘맨발의 성자’로 불렸던 이현필 선생, 함석헌 선생의 스승인 다석 유영모 선생, 구한말에 태어나 평생을 나환자와 걸인들과 함께 하여 ‘나환자의 아버지’라고 불린 최흥종 목사 등이다.

책에는 저자가 그들로부터 직접 보고들은 행적과 언행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최흥종 목사가 만주에 선교사로 갔을 때 단상에 올라가서 “하도 거시기가 거시기헌께 거시기가 거시기헌다”고 했더니 수많은 군중이 박수를 쳤고 자신은 그냥 단상에서 내려왔다는 일화는 당시 암울한 시대상을 비추고 있다.

책은 임락경 목사의 자서전적 글 모음집이다. 일제시대부터 유신시절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이 부른 총 70여 편의 창가, 동요, 관제가요, 군가, 유행가, 운동가요들을 소개하고 그 노래에 얽힌 개인적인 사연과 그 시대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중에는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묻혀 진 노래나, 관(官)에서 만들어 억지로 부르게 해 정권이 바뀌자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게 된 노래들도 있다.

저자가 처음 책에 붙인 제목대로, 이제는 아무도 주워서 다듬지 않는 ‘잡다한 노래들’이다. 그것이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구석지고 그늘진 곳만 골라 찾아 들어간 임 목사의 삶을 닮았다. 하지만 이 잡다한 노래 속에는 그들이 걸어온 길과 흘린 눈물, 그리고 우리 시대의 속살과 생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글도 쓰고 강연도 다니는 임락경 목사는 여전히 ‘촌놈’이고 ‘농사꾼’이다. 수맥 찾고 집터 봐 주고 아픈 사람 돌봐 주고 약이 되는 좋은 먹이를 알리는 일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의 거처인 강원도 화천 화악산 골짜기의 ‘시골교회’는 계절을 따라 벌을 치고 꿀을 따며, 콩을 비롯해 갖은 야채를 기르는 농장이요, ‘시골 간장 된장’을 생산하는 공장이면서 정신과 몸의 병으로 불편한 서른 남짓한 이들의 쉼터이기 때문이다. (사진 = 삼인출판사 제공) [북데일리 백민호 기자] mino100@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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