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는 유일한 위로였다
뼈는 유일한 위로였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4.15 2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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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에브리맨>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필립 로스의 <에브리맨>(문학동네.2009)는 한 남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병 들어 죽음을 앞 둔 주인공은 자신의 부모가 묻힌 묘지를 찾아 애도한다. 감정을 배제한 담담한 묘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애도를 전한다. 엄숙하면서도 숭고한 문장이다.

 ‘그들은 그저 뼈, 상자 속의 뼈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뼈는 그의 뼈였다. 그는 그 뼈에 가능한 한 바짝 다가가 섰다. 그렇게 가까이 가면 그들과 연결이라도 될 것처럼, 미래를 잃은 데서 생겨난 고립감은 완화되고, 사라진 모든 것과 연결되기라도 할 것처럼. 그 다음 한 시간 반 동안은 그 뼈들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겨졌다. 돌보지 않아 쇠락해가는 묘지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그 뼈들뿐이었다.

 뼈에게 말을 걸지않을 수가 없었다. 뼈가 말을 하면 거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와 그 뼈들 사이에서 많은 일이 벌어졌다. 그와 아직 육신을 입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금 벌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이 벌어졌다. 육신은 녹아 없어지지만, 뼈는 지속된다. 내세를 믿지 않고, 신은 허구이며 지금 이것이 자신의 유일한 삶이라는 사실을 의심의 여지 없이 믿고 있는 사람에게 뼈는 유일한 위로였다.’ (176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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