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의 <태연한 인생> 중에서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솜사탕 같은 봄이다. 입에 닿는 순간 사라지는 달콤함 때문에 쉽게 중독되는 맛. 길고 긴 겨울이 지나야 찾아오는 봄이기에 거부하지 않는다. 해마다 봄이 오면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 <꽃송이가>와 <벚꽃엔딩>를 듣는 것처럼 봄에 관한 시나 소설을 읽는다.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창비. 2012)속 이런 문장도 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 도시의 봄은 크레파스 상자 속 같았다. 난생처음 크레파스를 선물받은 아이가 상자에서 이것저것 아무거나 꺼내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물에 아낌없이 색칠을 해놓은 것도 같았다. 숲과 잔디와 바다와 꽃과 하늘과 산과 호수가 맨 처음 이름 붙여진 그대로의 초록과 연두와 노랑과 선홍과 파랑의 하늘색으로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 푸르름 속을 한차례의 핑크빛 벚꽃 축제가 흔들고 지나간 되에는 호수에 뜬 요트의 흰 돛과 언덕 위를 달리는 자전거의 은빛 바퀴살이 하루 종일 햇빛을 튕겨냈다. 만년설이 덮인 산봉우리는 마치 거대한 아이스크림이 스쿠프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대로 허공에서 얼어붙은 모양으로 도시의 짙푸른 하늘 한가운데 떠 있었다.
뒷마당의 잔디밭에 다시 파라솔이 펼쳐지고 고양이를 약올리기에 바쁜 다람쥐가 삼나무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튤립과 수선화가 피고 스프링클러가 하늘 높이 물줄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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