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장] 매화꽃 속에서 죽다
[명문장] 매화꽃 속에서 죽다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11.2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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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기 에세이<꽃 산행 꽃 詩>중에서

[북데일리] 무언가에 관심을 갖다보면이 비단 그것에만 꽂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꽃 산행 꽃詩>(궁리.2014)는 꽃을 찾아 전국의 산천을 누빈 얘기다. 저자는 꽃을 통해 자연의 섭리와 사람살이까지 아우르는 사유를 보여준다. 그 중 매화꽃과 벌을 관찰한 기록은 읽어볼만하다.

​ "벌은 뒷다리와 가운뎃다리로 매화의 꽃잎을 꽉 붙들고 있었다. 앞다리로는 수술을 붙들고 있었다. 더듬이는 암술과 수술이 밀집된 꽃의 중앙에 꽂아두고 있었다. 말하자면 꿀벌의 얼굴이 꽃잎에 푹 파묻힌 형국이었다. 매화 꽃잎이 암술과 수술을 보호하며 벌어져 있었다. 보쌈이라도 하듯 금방이라도 매화 한 송이를 떼메고 붕붕거리며 날아갈 것처럼!(중략)

  꿀벌은 꿀을 따고 있는게 아니었다. 아!아! 벌은 꽃에서 꿀을 따다가 꽃에서 숨을 거두었다. 매화 꽃잎 안에서 저의 생명을 철수한 것이다. 그야말로 꽃자리가 곧 치사(致死)의 현장이었다. 이제 녀석은 살아서 그토록 탐하던 매화꽃잎에 죽어서야 꽃잎처럼 붙어 있는 것이었다.

​ 죽은 꿀벌과 살아있는 매화의 묘한 관계였다. 주고 받는 사이가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 슬쩍 가만히 꿀벌의 옆구리를 건드려 보았다. 꿀벌의 다리 하나가 속절없이 먼지가 되어 떨어져 나갔다. 부스스 떨어지는 신체 일부를 바람이 받아 멀리멀리 데리고 갔다.

​ 꿀벌은 매화를 놓지 않고 있었다. 매화 또한 꿀벌을 떨어내지 않았다. 햇살이 녹이고 바람이 털어내고 비가 씻어낼 때까지 둘은 이런 관계를 유지할 것 같았다.​ 바람이 횡 불었다. 매화와 꿀벌이 부활하여 그네라도 타듯 한 몸으로 휘청거렸다. (36쪽,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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