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의 『소소한 풍경』중에서
[북데일리] 박범신의 장편소설 <소소한 풍경>(자음과모음. 2014)는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다. 젊음에 대한 욕망을 아름답게 표현한 『은교』에 이어 남녀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의 황홀한 묘사를 만날 수 있다. 다음 소개한 부분도 그렇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매우 귀하고 성스럽게 그려낸다.
‘최상의 연주자에겐 악보가 필요 없다. 연주자가 최종적으로 따라할 할 것은 음표, 샤프, 스타카토 따위로 지시된 광물성 악보가 아니다. 영혼 속을 질주하는 악상, 혹은 악기 자체의 식물성 욕망이다. 나는 경이롭게 연주된다.
물처럼 그가 스며들고, 오븐 속 식빵처럼 나는 부푼다. 연주 솜씨가 뛰어난 건지, 내 육체가 본래부터 부드러운 음률을 내재한 식물성 악기로서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판별하게 어렵다. 그것은 희고, 푸르다.
분명, 쾌락이 아니다. 자연 발생적인 휴식이고, 자연 자체인 것 같다. 그와 나의 감각 체계가 합일해 빚어낸 창의 다른 너울이라고 해도 좋다. 그의 손길은 이를테면, 내 육체를 단숨에 초기화해 언제나 저기, 먼 요람에 닿게 한다. 그의 손길엔 그 어떤 인위적인 ‘플롯’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92~93쪽,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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