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표처럼 떠도는 이방인의 삶
부표처럼 떠도는 이방인의 삶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1.09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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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검은 모래>

 [북데일리] 우리가 역사라고 기록하고 배우는 것들은 과거에 속한다. 하지만 여전히 역사라는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 어디서도 보상받지 못한 채 부표처럼 떠도는 생이 그러하다. 구소은의 <검은 모래>(은행나무. 2013)는 그들의 이야기다.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사랑을 말한다.

 소설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을 시작으로 100년 년에 걸쳐 이어진 삶의 이야기다. 제주에서 시작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돌아오지 못한 4대의 가족사를 들려준다. 1910년 9월 제주 우도 작은 해안 마을에서 태어난 구월이 그 시작이다. 잠녀인 구월이 남편 박상지를 따라 딸 해금과 아들 기영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날 땐 반드시 제주도 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건 제주에 대한, 조선에 대한 그리움의 시작에 불과했다.

 제주 우도의 검은 모래를 떠올리는 화산섬 미야케지마에 구월의 가족은 정착한다. 일본의 섬에서 조선인은 이방인, 그 이하의 삶을 살아간다. 박상지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당시 실종되고 구월은 해금과 기영과 살아간다. 구월은 기영을 도쿄로 보내고 해금은 기영을 뒷바라지를 하다 한태주를 만난다. 사랑을 약속한 한태주의 아이를 가졌지만 그는 이념을 따라 북을 선택하고 떠난다. 해금은 아들 건일(켄)과 남겨졌다.

 해방 후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국은 일본에 있는 자국민에 대한 보호를 할 수 없었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 처지에 놓인 기영도 북한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해금의 아들이 건일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켄으로 태어난 건 당연한 결과다. 뼈 속까지 일본인으로 살기 위해 어머니 해금과 반목하며 딸 미유에게도 철저히 친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숨긴 켄이다.

 “한국인이요? 제가 어떻게 한국인인가요? 한국말? 저 다 잊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일본인입니까? 천만에요. 일본인인 척 연기를 하면서 살 뿐이죠. 그까짓 피가 뭐라도 된답니까? 제 인생을 얼마나 아십니까? 생명 하나 준 것으로 생색냈으면 됐습니다. 그 생명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알기나 합니까? 일본 땅에서 일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려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디딤돌이 아닙니다. 걸림돌일 뿐이죠. 그것이 현실입니다.” 292쪽

 소설은 구월로 시작해 해금으로 이어지는 과거와 켄과 미유로 이어지는 현재의 삶이 교차로 진행된다. 정착하지 못한, 경계인으로의 삶은 손녀인 미유까지 이른다. 미유의 친할아버지도 조선인이라는 사실로 일본인 연인과 이별을 할 줄 몰랐으니까. 비로소 미유는 해금과 켄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이유를 알게 된다.

 ‘디아스포라는 정착을 꿈꾸는 영원한 이방인이다. 그들의 삶에는 늘 결핍이라는 물이끼가 습진처럼 끼어 있다. 아무리 먹고살 만해도 그들의 가슴은 허지지고, 두꺼운 옷을 껴입고 있어도 늘 춥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설명한들 알 수 있을까.’ 215쪽

 <검은 모래>가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으로 지닌 의미는 크다. 비단 제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서가 아니다. 역사라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을 조명했기 때문이다. 작가 구소은이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자료를 수집했는지 그 흔적은 아름다운 서사와 생생한 묘사로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작가는 역사라고 기록된 과거 속에 수많은 이들의 슬픔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더불어 정착할 수 없는 운명인 디아스포라의 삶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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