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둘러싼 여섯 편의 이야기
섬을 둘러싼 여섯 편의 이야기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12.26 0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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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의 <망향>

 [북데일리] 누구나 더 넓은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터전을 떠나지 못하고 사는 이도 있다. 그곳이 섬이라면 어떨까? 여행자에게 섬은 낭만적인 공간처럼 보이겠지만 섬사람들에게는 생활의 터전일 뿐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망향>(레드박스. 2013)은 ‘시라쓰나지마’ 라는 섬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여섯 편의 이야기다. 일찍 섬을 떠난 사람,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떠나지 못하는 사람,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 저마다의 사연과 비밀과 마주한다.

<귤꽃>은 시라쓰나지마 시가 시라쓰나지마로 통합되는 시 폐막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남자와 야반도주를 한 후 연락을 끊고 유명 작가가 된 언니가 행사에 참석하면서 지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왜 ‘나’ 와 엄마를 남겨두고 섬을 떠나야 했는지 아무도 몰랐던 비밀을 말이다. 강도를 죽인 어머니의 죄를 대신해 섬을 떠난 것이다. 어머니는 진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나는 언니를 원망하며 섬에서 가정을 꾸린다. 섬을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 없었던 나는 아이러니하게 섬을 떠나려는 딸을 반대한다.

 <바다꽃>은 바다에서 실종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어머니와 아들 곁을 맴도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 시신을 찾지 못해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일하느라 ‘나’ 는 늘 혼자 시간을 보낸다. 그런 모자 앞에 친절한 아저씨가 나타난다. 꽃을 들고 찾아온 아저씨를 자신에 대한 연정인 줄 알고 어머니는 모질게 거절한다. 이십 년 후 아저씨의 딸을 통해 아저씨가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한 사실을 전해 듣는다. 번거로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시신을 유기했고 나중에는 진실을 밝히려고 했다는 것이다.

 <꿈나라>는 집안의 절대적 힘을 지닌 할머니 때문에 섬을 떠나는 삶을 꿈꿀 수 없었던 ‘나’ 는 결혼 후 아이와 함께 그토록 가고 싶었던 도쿄 드림랜드를 찾은 이야기다.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에 제약을 받았던 나는 섬이 정말 싫었다. 모든 게 할머니 때문이라 여긴 나는 쓰러진 할머니를 뒤로 한 채 집을 나온다. 결국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자신의 행동은 비밀이 되고 말았다.

 세 편이 섬이라는 공간에서 숨겨진 비밀을 밝혔다면, 나머지 세 편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 중 담임을 맡은 반의 왕따 문제로 고민을 하는 교사인 ‘나’에게 교사였던 아버지의 제자가 전하는 이야기 <빛의 항로>가 가장 인상적이다.

 왕따 문제로 가해자 부모를 만나지만 진심으로 사과할 마음이 없다는 걸 알기에 힘들다. 거기다 누군가의 방화로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다.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의 제자는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알려준다. 중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섬의 조선소에서 마지막 진수식 행사에 아버지는 어머니와 아들이 아닌 제자와 참여하셨다. 아버지와 같은 교사가 되었지만 그 일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사라지지 않는다. 병문안을 온 제자가 바로 그 제자였다. 그는 왕따 피해자로 몹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제자에게 진수식에 참석해 이런 말을 들려준다.

 ‘큰 바다에 나간 배가 자신의 역할을 완수하며 바다를 헤쳐 나가듯이 사람 역시 각자의 인생을 걷는단다. 때로는 바다가 거칠어지듯 인생에도 폭풍이 불어닥칠 때가 있어. 배를 내보낸 사람은 구조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모든 항로에 가까이 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내 역할은 내가 맡은 바다를 통과하려고 하는 배를 이끌고 지키는 데 있다고 생각해. 바다가 거칠어지면 가라앉지 않도록 같은 항로를 나아가는 배들을 서로 굳건하게 연결시키는 것도 내 일이지. 어떤 배도 다른 배를 침몰시켜서는 안 돼.’ (빛의 항로, 287쪽)

 미나토 가나에는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때문에 추리소설보다는 인간 내면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섬에 다리가 놓이면 섬은 더이상 섬이 아니듯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미나토 가나에는 이 소설집을 통해 비밀을 간직한 채 홀로 섬이 되기보다는 함께 나눌 수 있는 관계라는 다리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던 아닐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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