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가공선, 그곳은 지옥이었다!
게 가공선, 그곳은 지옥이었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11.26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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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바야지 타끼지의 『게 가공선』

 

[북데일리] ‘한 학생은,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간 절간의 어두컴컴한 불당에서 보았던 ‘지옥 그림’을 떠올리며 그것을 바로 자신이 겪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릴 적 그에게 그런 그림들은 마치 이무기 같은 동물이 늪에서 꿈틀꿈틀 기어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과 정말 똑같았다. ―그들은 과로 때문에 오히려 잠들지 못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유리창을 마구잡이로 긁어대는 듯 섬뜩한 이 가는 소리나 잠꼬대, 가위눌린 듯한 괴상한 고함 소리가 어두컴컴한 ‘똥통’ 여기저기서 들렸다.’ (57쪽)

 1929년에 발표된 코바야지 타끼지의 <게 가공선>(창비. 2012)의 한 부분이다.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131쪽의 짧은 분량의 소설은 제목 그대로 ‘게 가공선’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생생하게 담았다. 문제는 평범한 게 가공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설은 ‘1926년 게 가공선에서 가혹한 노동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자본에 의해 잔혹하게 소모되는 노동 현장을 고발한다. 먼 바다에 홀로 선 게 가공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 보여준다. 감독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소설 속 표현처럼 그곳은 ‘똥통’이었고 ‘지옥’이었던 것이다.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가난한 농부, 학생, 어부, 힘든 광산에서 치여 선택한 광부 등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국가적 산업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혹사한다. 그리하여 회사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작은 희망은 싹을 틔우기 전에 사라진다. 시체로 변하는 동료를 보면서 인간 이하의 대접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단합한다. 파업을 도모하지만 이를 알아차린 감독이 불러들인 구축함의 해병 앞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소설은 실패가 아닌 다시 한 번 투쟁의 열의를 불사르는 모습을 보여주며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앞날의 승산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사느냐, 죽느냐 하는 거니까.”

 “그래, 한 번 더! ” (129쪽)

 발표된 지 80년이나 지난 소설이 지닌 의미는 특별하다. 그들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깊어만 가는 양극화, 늘어가는 청년 실업, 졸업을 미루는 대학생 등 우리 사회 곳곳의 심각한 문제와 맞닿아 있다. 거울처럼 우리네 삶을 비추는 아픈 소설이다. 책을 덮은 후에도 여전히 자본에 휘둘리며 살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의 아픔을 달래며 응원하는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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