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아름다운 영화처럼 매혹적인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처럼 매혹적인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10.21 2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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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명의 <악의 추억>

  [북데일리] ‘기억은 괴물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잊는다 해도 그것은 잊지 않는다. 그것은 기록을 다른 곳에 남겨둘 뿐이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기록을 유지하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또 자신의 의지에 따라 기록을 우리 회상 속으로 불러낸다. 우리는 우리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우리를 가지고 있다.’<존 어빙, 87쪽 재인용>

 몽환적인 표지의 <악의 추억>(2009.밀리언하우스)은 <바람의 화원>으로 잘 알려진 이정명의 작품이다. 소설은 가상 도시 뉴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는 이야기다.

 배경인 뉴아일랜드는 말 그대로 새롭게 생인 섬이다. 권력과 돈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도시, 향락이라는 불빛을 향해 모여드는 많은 사람들. 반대로 침니랜드는 어둡고 초라하다. 모두가 뉴아일랜드에 열광하여 떠났기 때문이다.

 소설은 침니랜드와 뉴아일랜드를 이어주는 케이블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시작한다. 미모의 여인이 기묘하게도 웃는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된다. 수사팀장 헐리는 사건에 심리분석가 라일라와 정직 중인 매코이가 합류한다. 뚜렷한 단서도 없이, 새로운 살인사건이 터지고, 도미노처럼 주변인물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뉴아일랜드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지닌 집안과 연결된 사건으로 빨리 종결지으려 한다.

 분명 연쇄 범죄다. 매코이는 과거의 사건을 떠올린다. 하나의 살인사건에 이어 주변인물의 죽음까지, 그가 매듭진 사건범행과 동일하다. 미소 짓는 시체, 범인은 사이코패스다. 매코이는 7년 전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인 코헨을 죽이고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살고 있다. 심리분석가인 라일라도 일란성 쌍둥이였던 동생이 코헨에 의해 살해되었다. 범인은 활개를 치고, 경찰마저 조종한다. 수사는 점점 미궁에 빠지고 매코이와 헐리의 대립은 커진다. 라일라는 이상하게 매코이에게 연민을 느낀다. 매코이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보았기 때문이다. 복수를 꿈꾸며 살아온 시간, 단 한 순간의 휴식도 없었던 삶을 말이다.

 소설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어제의 침니랜드는 사라지고 뉴아일랜드만이 늘어난다. 소설 속 어두운 세상은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흉악한 범죄와 타락으로 물들고 있으니 말이다. 발전 뒤에 가려진 진실을 만나는 듯 씁쓸하다.

 놀라운 반전과 흡입력이 대단한 소설이다. 끔찍하면서도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처럼 매혹적이다. 안개를 닮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접전, 누가 누구를 쫓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모호함으로 독자를 유혹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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