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법을 소설로 배운다?
딱딱한 법을 소설로 배운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10.14 2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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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의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북데일리] ‘법은 재미없는 미남과 비슷합니다. 곁에는 두고 싶은데, 가까이 하면 한없이 지루합니다. 신문 기사에서, 논리 대결에서, 시사 토론에서 법률 개념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견디지 못하고 좀 알아보려 책을 펴면 책갈피에 수면제라도 발라 놓았는지 눈꺼풀이 덮입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법은 어렵고 무섭다. 누군가 법이 어렵다는 생각은 편견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법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바랄 게 없겠지만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니 기본적인 법률 지식은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런 바람에 맞게 실용서처럼 법에 대해 쉽게 설명한 책이 있다. 추리 소설가이자 현직 판사인 도진기의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2013. 추수밭)는 딱딱한 설명이 아니라 소설로 법을 설명한다.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 란 부제가 설명하듯 22가지의 사건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법원을 배경으로 판사, 검사, 변호사 각각의 역할을 보여주며 죄에 대해 판결한다. 흥미로운 건 등장인물로 판사는 염라왕, 국선 변호사는 소크라테스다. 책은 빵을 훔친 장발장 사건으로 시작한다. 빵을 훔친 건 죄지만 그의 딱한 사정을 듣고 판사는 무죄를 선고한다. 다음 사건은 성냥팔이 소녀에 관한 것이다. 추운 겨울 길에서 성냥을 팔다 죽은 성냥팔이 소녀를 모른 척 지나친 사람들은 죄가 있을까?

 책은 먼저 법과 도덕에 관해 묻는다. 누가 봐도 장발장의 사연은 안타깝고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은 가엾다. 그렇다고 사연 있는 도둑을 모두 무죄라 할 수 없고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을 방치한 시민들을 모두 벌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 설정을 통해 법이 무엇보다 강한 규칙이며,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설명한다.

 본격적인 사건들이 등장하면서 우리 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법률 용어가 나온다. 대동강 물을 판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를 통해 법이 돈 문제를 다루는 민사와 범죄를 다루는 형사가 있으며 민사는 민법, 형사는 형법이 적용된다고 알려준다. 마녀를 죽인 헨젤과 그레텔에게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으므로 정당방위가 적용되며, 자신의 귀를 자르고 고갱을 위협한 고흐는 제 정신이 아니었으므로 죄를 벌할 수 없다고 알려준다.

 만인에게 평등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법답게 억울한 죄인을 만들면 안 된다는 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 ,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익숙한 법이 정한 절차를 설명해 줘야 하는 ‘미란다 법칙’ 같은 전문 용어도 등장한다. 기생이 양반에게 반항한 죄인 춘향이 재판을 통해 재판의 기본 원칙에 따라 반드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또한 불법으로 얻은 증거(이를테면, 함정수사 같은 경우)는 증거가 될 수 없음도 잊지 않는다. 책엔 실제 이태원 사건도 등장하는데, 이 사건을 통해 한번 재판을 받아 확정되었으면, 같은 범죄로 다시 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 원칙을 설명한다.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기 위해 판사, 검사, 변호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그 외에도 피리 부는 사나이가 유괴범인지, 담보도 없이 돈을 빌린 허생이 사기꾼인지, 타이타닉호에서 혼자 살아남은 디카프리오의 죄는 무엇인지, 잘 알려진 동화나 옛날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흥미롭게 접근한다. 법은 무조건 어렵다는 편견을 깰 수 있게 쉽고 친절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일반인 뿐 아니라 법에 관련된 일을 꿈꾸는 학생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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