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다섯 노파가 킬러라고?
예순다섯 노파가 킬러라고?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8.25 16: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라지기 전까지 한 번쯤은 빛나게 살아야...

 [북데일리] 발표하는 소설마다 이슈를 불러오는 구병모의 <파과>(2013. 자음과모음)가 화제다. 소설은 ‘방역’ 이라 불리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삼은 예순다섯의 노파 조각(爪角)의 이야기다.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원해서 하는 이가 없듯 조각도 그러했다. 그러니 곁엔 사람이 아닌 무용이란 이름의 개가 있었다. 평생을 방역을 업으로 삼았기에 지켜야 할 대상을 만들지 않았다. 자신에게 일을 가르쳐주었던 류와 그의 가족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면서 더욱 절실해졌다. 조각에게 미래는 없다. 다만 오늘, 현재만 있을 뿐이다. 

 그런 조각의 신경을 건드리는 서른세 살의 투우가 있다. 투우는 신세대답지 않게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받는다. 조각을 마주할 때마다 투우는 그녀를 걸고 넘는다. 투우는 어린 시절 조각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소년. 조각은 단 번에 투우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에게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조각에게도 삶은 전쟁을 치르듯 살벌한 반복일 뿐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스스로를 방어하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일은 하기에 예순다섯이란 나이는 은퇴를 해야 할 시기였다. 비밀을 유지하며 건강을 점검하던 원장인 장 박사 대신 강 박사를 만난 건 피할 수 없는 육체의 한계 때문이었다. 상처를 꿰매주고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던 강 박사와 그의 가족에게 연민을 느낀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지켜야 할 대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이 무너지고 있었다. 지켜야 할 대상이 생겼으므로 조각은 더욱더 주변을 살펴야 했다.

 투우에게 조각은 존재의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가정부로 출장 간 어머니 대신 자신을 위해 알약을 갈아주던 다정한 그녀에 의해 아버지가 죽고 투우의 삶은 붕괴되고 만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투우는 방역의 세계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사업과 관련된 높은 직위의 누군가의 지시였겠지만 유일한 복수의 대상은 조각뿐이다.

 ‘그녀는 앞날에 어떤 기대도 소망도 없었으며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오늘도 눈을 떴기 때문에 연장을 잡았다. 그것으로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확인하지 않았고, 자신의 행동에 논거를 깔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더 오래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일찍 죽기 위해 몸을 아무렇게나 던지지도 않았다. 오로지 맥박이 멈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움직이는 그것은 훌륭하게 부족이 조합된 기계의 속성이었다.’ 255쪽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숨 쉬는 이유조차 모르고 살았던 조각에게 자신의 비밀을 지켜준 강 박사의 가족은 지켜야 할 존재의 시작이었다. 그녀 자신이야말로 자신에게 지켜야 할 대상이라는 것도 일깨워준 것이다. 언제나 파과(破果)로 존재했던 삶이 아니라 평범한 할머니로 살아도 괜찮다고, 사라지기 전까지 빛나게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333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