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은 누가 봐도 멋진 캐리어우먼이다. 당당한 싱글로 부러움의 대상이다. 다만 대학 졸업 후 연애다운 연애를 하지 못할 뿐이다. 동호회 친구인 지방대 출신의 흐물과 막역한 사이지만 연애의 감정은 없다. 흐물이 미연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지만 말이다. 미연이 공을 들이는 상대는 스펙 좋은 태환이다. 채식주의자인 그를 의식하며 식사를 주문하고 그가 좋아하는 클래식을 검색한다. 그러나 둘 사이는 발전이 없다.
미연은 결혼과 일 두 가지 토끼를 다 잡으려고 애쓰지 않는지도 모른다. 명문대 출신으로 기자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졌지만 결혼 후 육아와 일로 힘들어하는 동생 세연과 친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때가 아닌 듯하다. 헤드헌터란 직업 덕분에 쟁쟁한 학벌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한 탓도 있다. 결혼은 예측할 수 없는 전쟁이며 아직 그 전쟁에 참전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결혼한 사람들은 싱글인 사람들을 만나면 자유로워서 좋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자유를 존중해주지는 않는다. 자기들이 선택한 삶에 따르는 무거운 짐들을 당연한 듯 나누어 들자고 한다. 그들에게 나란 존재는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어서 시간이 넘쳐나는 인간일 뿐이다.’ 152쪽
의도하지 않은 태환과의 하룻밤이 미연을 흔들지만 사랑은 아니었다. 미연에게 모든 걸 다 바친 흐물도 다른 이와 결혼을 선택한다. 믿고 따랐던 직장 상사의 퇴사도 미연만 모르고 있었다. 점점 성과는 멀어지고 당당한 20대 후배들에게 기가 눌린다. 결국 미연만 남은 것이다. 다행스럽게 미연은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
‘어차피 생이란 그런 것. 진행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경각심이 든다면 그것은 파국이라 할 수 없으리라. 완전한 격정과 놀라운 속도, 그리고 이전의 생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일탈이 혼연일체를 이룰 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은 완성된다. 원인과 과정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인연이 이미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다음.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받아들이고 다시 걸어가는 것’. 282쪽
소설은 지루하지 않게 잘 읽힌다. 슈퍼맘을 원하는 시대의 모든 직장 여성들이 충분히 공감할 내용이다. 거기다 결혼과 동시에 터지는 살림과 육아, 집 장만에 대한 이야기도 거들고 있으니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래서 아쉽다. 헤드헌터란 소재를 통해 취업과 이직을 위한 치열한 삶을 그리고 있지만 현대인의 일상과 고민을 평탄하게 나열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파격은 아니더라도 깊게 파고들었다면 더 강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