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 '사랑과 우정'
삶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 '사랑과 우정'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8.09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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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도를 다룬 캐슬린 그리섬의 <키친 하우스>

 

[북데일리] <추천>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을 소재로 쓴 소설을 읽은 일은 힘들다. 왜냐하면 대부분 잔인한 고통의 기록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 속 노예제도를 다룬 캐슬린 그리섬의 <키친 하우스>(2013. 문예출판사)는 다르다. 아니, 특별하다. 분명 소설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로 고통으로 채워진 삶을 보여주지만 안온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소설은 18세기 말 담배농장을 배경으로 농장주인 제임스와 아내 마사의 자녀들과 흑인 노예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백인인 주인들이 거주하는 ‘빅하우스’와 노예들이 음식을 만들며 생활하는 ‘키친하우스’, 두 공간의 삶을 벨과 라비니아, 두 명의 화자가 들려준다. 벨은 농장주의 딸로 빅하우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노예가 되었고, 라비니아는 백인이지만 고아라서 농장에 노예로 팔려왔다.

 어린 라비니아는 자신을 돌봐주는 노예 가족들과 생활한다. 하지만 피부색으로 사는 곳이 달라지고 누군가를 주인으로 모시는 일들과 노예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이해할 수 없었다. 노예 조지와 마에는 그런 라비니아를 딸처럼 사랑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저 닭들을 봐. 어떤 닭들은 갈색이고 어떤 닭들은 하얀색이고 또 검은색도 있어. 저 닭들이 병아리였을 때 어미 닭과 아빠 닭이 그런 걸 신경 썼을 것 같니?” 38쪽

 라비니아가 키친하우스와 빅하우스를 오가며 생활하며 자라는 동안 농장에서는 많은 사건이 발생한다. 벨이 남편의 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마사는 벨을 경멸한다. 사고로 딸마저 잃고 힘든 삶을 마약에 의지한다. 농장의 감독관 랭킨은 여자 노예들을 겁탈하며 폭행을 가하고 제임스의 아들 마셀도 가세한다. 그 일로 벨은 마셀의 아이를 임신한다. 그러다 병으로 제임스가 죽자 마사의 언니인 사라와 매든 부부가 농장을 관리한다.

 벨과 라비니아는 같은 노예 신분이었지만 피부색의 차이로 삶은 달라진다. 벨은 학대 속에서 아이와 살고 아름다운 숙녀가 된 라비니아는 마셀과 결혼하여 빅하우스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딸을 낳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고 마셀과의 갈등으로 마약을 찾는다. 마셀의 횡포가 극심해지자 라비니아는 흑인들의 도주를 돕고 빅하우스를 떠나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시어머니 마사가 죽고 빅하우스는 불에 타버리고 마셀은 아들인 벨의 총에 맞아 죽는다. 모든 게 끝났지만 삶은 끝나지 않았다.

 “아가, 이 세상에는 네가 아직 모르는 것들이 있어. 우리는 네 가족이고, 그건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네가 백인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네 가족이야. 마마는 언제까지나 네 엄마고 벨은 언제까지나 너의 벨이란다.” 160쪽

 소설은 매우 잔혹하다. 노예의 삶, 어디에도 인간에 대한 존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이 생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서로를 위하는 마음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어 가능했다. 삶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우정이라는 자명한 진실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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