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
책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7.04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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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쿠이 도쿠로의 <미소 짓는 남자>

 [북데일리] 모든 범죄에는 동기가 있기 마련이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 말이다. 때로 그 동기로 인해 형벌이 줄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묻지마 폭력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범죄가 발생한다. <미소 짓는 사람>(2013. 엘릭시르)에도 이처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건 동기가 등장한다. 엘리트 은행원이 늘어나는 책 놓을 공간이 부족해서 아내와 딸을 살해한 것이다. 과연 이 말이 사실일까?

 사건은 물놀이를 위장 해 아내와 딸을 살해했다는 범인 니토의 자백으로 시작한다. 처음에는 부인을 했지만 결국 자신의 죄를 자백한 니토는 평범한 은행원이다. 직장 동료와 지인들은 한결같이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자신의 업무에 충실했고, 사람들에게 친절했으며 가족을 사랑했다는 게 이유다. 책 놓을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라고, 뭔가 다른 사연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소설은 사건에 흥미를 느낀 화자인 소설가가 니토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그 동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흥미로운 점은 취재 과정에서 니토의 주변에서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아내와 딸이 죽은 강 근처에서 니토와 근무했던 은행원이 시체로 떠올랐다. 그는 2년 전 실종된 상태였고 주변인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았다. 상사에게 아부를 떨고 자기 실적을 위해서 동료나 부하의 공을 가로챘다. 때문에 모두가 그를 싫어했지만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니토가 그를 죽였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승진이 걸려 있기는 했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다. 그 역시 다른 이들처럼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소설가는 니토를 만난 직접 사건에 대해 묻는다. 독자는 진실을 기대한다. 그러니까 다른 이유 말이다. 그러나 니토는 진술한 내용을 번복하지 않고 같은 대답으로 일관할 뿐이다.

 ―정말이죠? 정말로 당신은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말이죠?

 “예, 틀림없습니다.”

 ―책을 둘 곳이 없어서 그랬다는 이유도 진짜입니까?

 “진짜입니다. 책은 한없이 계속 늘어나니까요. 아아, 소설가니까 아시겠군요. 처분하면 된다고 간단히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건 절대 안 되죠. 책을 팔다니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물리적으로 책을 보관할 곳은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책장에 더는 꽂을 곳이 없어서 일시적으로 바닥에 쌓아 올렸습니다만, 그런 건 제 미의식에 반하는 짓입니다. 책장에 저자와 출판사별로 책을 깔끔하게 꽂아야 비로소 완벽하게 만족할 수 있는 법이죠. 어때요? 아닙니까? ” 164~165쪽

 놀랍게도 사건은 또 있었다. 니토가 대학 시절 친한 친구가 트럭에 치여 죽은 것이다. 누가 봐도 평범한 교통사고였다. 특이한 점은 죽은 친구의 게임기를 니토가 갖고 있었다는 거다. 게임기 하나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하지만 사건에 관련해 인터뷰하면서 니토가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을 함정에 빠트린 사실을 확인한다. 과연, 니토는 어떤 인간일까. 점점 한 인간의 심연의 끝이 어디일까 궁금해진다. 분명 그의 어린 시절 어딘가에 감당할 수 없는 죽음에 관한 트라우마가 존재했을 거라 믿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책 때문에 가족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소설은 취재 형식으로 사건과 니토를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인터뷰이는 주관적 견해를 말할 뿐이다. 어쩌면 니토의 자백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의 삶에 도미노처럼 살인이 발생했지만 그와는 무관한 건 아니었을까? 소설에서 말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존재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거다. 우리 삶 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므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해한 척하며 살고 있다. 자신들이 이해한 척한다는 사실조차 보통은 잊고 산다. 안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바로 불안해지니까. 그 눈속임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니토라는 존재에 우리는 이상한 흥미를 보였다. 전부 자신의 불안을 억누르고 싶기 때문이었다.’ 338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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