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물방울 같은 존재
우리는 모두 물방울 같은 존재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5.2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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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상실을 아름답게 그린 소설집

[북데일리] 윤대녕의 소설엔 언제나 낯선 이와의 만남, 일상에서 벗어난 또 다른 행로, 누군가의 부재, 결핍이 있다. <누가 걸어간다>(2004. 문학동네)은 인간의 고독, 상실, 절망에 대해 말한다.

표제작인 <누가 걸어간다>의 주인공은 몇 년 전 아내와 이혼을 하고 암 진단을 받아 생의 마감을 생각하며 파주로 들어온다. 때마침 근처 군부대에서 탈영한 남자는 미용사인 여자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두 남녀의 모습은 주인공과 학원강사인 한 여자와의 만남과 비교되며 절망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탈영병은 주인공의 마음과 겹쳐진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삶은 그 순간,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찔레꽃>은 시인이 되고자 했으나 결국 삼류 영화의 시나리오를 손봐주는 소설가로 전락한 주인공과 일이 없는 방송작가의 이야기다. 우연하게 만난 둘은 찔레꽃에 대한 추억을 통해 긴밀해진다. 소설가가 어린 시절 만났던 이발사의 집 앞에 가득했던 찔레꽃, 시인이었던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방송작가의 병든 아버지가 부르던 노래 찔레꽃. 이발사이면서 시인이었던 그는 같은 사람이었을까. 추억과 동시에 붙잡을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쓸쓸하다.

윤대녕의 소설 속 화자는 항상 자신을 찾아 헤맨다. <흑백 텔레비젼의 꺼짐>에서 주인공 서정원은 권력자의 서자로 자신의 아버지를 알지 못하다 자신의 첫 남자가 자신의 생부라는 것을 확인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물방울 같은 존재였어요. 무엇에 부딪히면 툭 꺼져버리는 존재말예요. 그걸 터뜨리지 않기 위해 정말 무던히도 애를 쓰며 살아왔어요. 매순간 숨이 차게 말예요. 하지만 그게 햇빛 속에 떠 있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버티겠어요.” 55쪽

소설 속 그녀만 물방울 같은 존재일까.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물방울 속에 갇혀있거나, 물방울 속에 살고 있는 타인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서로의 물방울을 터뜨렸을 때, 비로소 관계는 확장되고 커다란 그들만의 물방울을 만드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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