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묶여'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과거에 묶여'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5.23 2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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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핑계로 과거의 조각 놓지 못해

[북데일리] 삶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 과거의 삶에 머무른 사람들도 있다. 과거 진행형인 삶을 산다. 김인숙의 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2005. 창비) 속 인물들이 그랬다. 추억이라는 핑계로 과거의 조각을 놓지 못한다.

 표제작 <그 여자의 자서전>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꿈을 딸이 아닌 아들이 실현해주길 바랐다. 책장 가득 책을 채운 이유도 아들을 위해서다. 그 책에서 꿈을 키운 건 딸이었지만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딸은 자신의 책을 갖지 못했고, 자신의 책을 쓰지 못한다. 자신의 이야기 아닌 타인의 삶을 대필하며 산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어린 시절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다.

  <바다와 나비>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온 ‘나’와,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려하는 ‘채금’의 이야기다. ‘나’는 아이의 유학을 핑계로 중국에 온다. 아이가 기숙사로 들어가자, 혼자 남는다. 한국에 있는 채금의 어머니의 부탁으로 채금을 만나게 되고, 그녀가 그토록 한국으로 떠나려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나’와 ‘채금’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싶은 갈망이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비가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았으니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머지 단편도 마찬가지다. 결혼과 승진을 꿈꾸던 남자가 어느 순간 트럭 운전사로 전락해버린 <밤의 고속도로>, 실패와 실연으로 도망치듯 중국으로 간 남자의 방황하는 삶 <감옥의 뜰>, 식물인간의 남편과 시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한 젊은 여자의 이야기 <모텔 알프스>.

 ‘그때 나는 스물일곱살이었고, 정수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입사가 결정되었고, 내가 입사를 하자마자 정수기가 가정필수품인 것처럼 붐을 이루었고, 느닷없는 도시개발로 한뼘만하던 집값이 껑충 뛰어 집안은 집값에 붙은 동그라미 숫자를 헤아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풍요로웠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내 인생의 절정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꿈이 꿈만으로도 풍요로웠던 시절......’<밤의 고속도로, 140쪽>

 그들에게도 삶의 중심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환한 미소로 빛을 발하던 시절 말이다. 그리하여, 미래를 꿈꾸고 행복을 계획하던 순간들. 어쩌면 김인숙은 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시절을 잘 살아왔는지, 그때 그 순간 최선을 다했는지.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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