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회의 역사]③우뢰 갈채 받았던 디킨스
[낭독회의 역사]③우뢰 갈채 받았던 디킨스
  • admin
  • 승인 2008.06.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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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아쉬운 마지막 회다.
‘낭독회의 역사’ 시리즈에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보여 왔다. 낭독회에 대한 높아진 관심과 그것이 보편화 되고 있다는 징후 일 것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2005)를 바탕으로 추적하는 낭독회의 역사, 그 마지막 회에서는 ‘연기인’에 가까웠던 디킨스(1812 ~ 1870)의 낭독회 여행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③낭독회 여행

유럽 전역에 걸쳐 19세기는 작가 낭독회의 황금기였다. 영국의 스타는 찰스 디킨스였다. 항상 아마추어 연출에 관심을 잃지 않았던 디킨즈는 자신의 작품을 낭독하는 데도 배우적인 소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플리니우스의(낭독회의 역사 ⓛ편 참조) 경우처럼 디킨스의 낭독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초고를 퇴고하고 픽션이 대중에게 미칠 영향 등을 측정하기 위해 자기 친구들에게 읽어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말년에 디킨스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연기, 즉 글자 그대로의 ‘대중 낭독회’가 그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쓴 그의 두 번째 작품 <종소리>의 낭독회를 열고 난 뒤 디킨스는 부인인 캐서린에게 쓴 편지에서 “만약 당신이 지난 밤 마크레디(디킨스의 친구)를 보았다면 내가 작품을 읽어 내려갈 때 그 친구가 소파에 앉아 부끄러움도 모르고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 우는 모습을 모았다면 당신도 내가 느꼈던 것처럼 힘을 가진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느끼게 되었을 거요”라며 몹시 기뻐했다. 디킨스의 전기 작가 중 한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짓누를 힘, 감동을 안겨 주고 동요시킬 수 있는 힘, 그의 작품들의 힘, 그의 목소리의 힘”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디킨스는 전문가다운 연기인이었다. 그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텍스트를 해석하면 누구나 그 변형된 텍스트를 ‘유일한 해석’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벌였던 그 유명한 ‘낭독회 여행’을 보면 이런 사실이 더욱 명백해진다.

클리프턴에서 시작해 브라이턴에서 끝난 최초의 장거리 여행은 40여개 도시에서 80여 차례 낭독회를 갖는 것으로 꾸며졌다. 그는 ‘창고, 무도회장, 서점, 사무실, 공회당’에서 들을 낭독했다. 처음에는 높은 책상에서, 나중에는 관중들이 자신의 몸짓을 더 명확히 볼 수 있게 좀 더 낮은 책상 앞에서 낭독을 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 한 편을 듣기 위해 모인 청중들도 자기 친구들이 그 작품에서 받았던 인상을 그대로 받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갖고 있었다. 청중들은 디킨스가 바라던 대로 반응했다. 한 남자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흐느끼다가 나중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자기 앞에 놓인 의자의 등받이 위로 쓰러져 격한 감정에 몸을 맡겼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결과가 ‘고된 훈련’ 끝에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 디킨스는 한 작품의 낭독과 몸짓을 연습하느라 최소 2개월 이상의 시간을 들였다. 낭독용 책 - 이런 여행을 위해 그 자신이 편집한 작품 사본 - 의 여백에는 자신이 내야 할 목소리를 기억하기 위해 “쾌활하게... 엄숙하게... 애조 띤 목소리로 신비감 넘치게,.,”라고 써놓았다. 몸짓을 위해서도 “아래로 손짓을 가리킨다 ... 몸을 전율 한다 ... 공포에 휩싸인다”로 적었다.

그렇지만 어느 전기 작가가 꼬집은 것처럼 그는 장면을 지시대로 연기하지 않고 그런 장면을 암시하고 환기시키고 넌지시 비쳤을 뿐이었다. 매너리즘도 없었고 계략적인 장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에게만 고유한 ‘경제 수단’으로 놀랄 만한 효과를 창출해냈다. 대중들은 마치 그를 통해 말하는 것처럼 느끼며 그의 소설을 읽었다. 낭독회가 끝나면 뜨거운 찬사가 쏟아졌다. 디킨스는 이런 찬사에 대해 한 번도 감사의 마음을 표했던 적이 없었다. 청중들에게 고개를 한 번 까딱이고는 무대를 떠나 땀에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것들이야 말로 디킨스가 자신의 청중들을 그의 주변으로 끌 수 있는 중요한 동기였으며 오늘날 대중 낭독회에 청중들이 모여드는 주된 요인이기도 하다. 즉, 작가가 배우가 아닌 작가로서 연기하는 것, 어떤 등장인물이 창조 될 당시 작가의 마음에 담겨 있던 그 목소리를 듣는 것, 작가의 목소리와 작품을 대조해 보는 그런 것에 마음에 끌려 독자들은 낭독회를 찾는다.

성공적인 대중 낭독회를 통해 작가들은 보호되고 번식된다. 보호된다는 뜻은(플리니우스가 고백했듯이) 작가들에게 자신들의 작품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청중이 많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의미일 것이고, 잔인한 표현에서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는 뜻에서 보호된다고 할 수 있다. 번식된다는 뜻은 작가들이 독자를 낳고 또다시 독자들이 작가를 낳기 때문이다.

낭독회가 끝나고 책을 사는 관중들은 그 낭독회를 증식시키며, 작가 입장에서는 백지장을 채워 나가는 그 행위가 텅 빈 벽을 향해 공허하게 떠들어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로 인해 작가는 고무감을 느끼며 더 많은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사진 = 디킨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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