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회의 역사]②청중을 비탄에 빠뜨리다
[낭독회의 역사]②청중을 비탄에 빠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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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6.2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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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2005)를 바탕으로 추적하는 낭독회의 역사, 그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단테, 초서, 몰리에르, 루소의 다양한 낭독회를 다룬다.-편집자 주

②단테, 초서, 루소의 낭독회 - 청중을 비탄에 빠뜨리다

작가들은 즉흥적으로 쏟아지는 대중의 격려를 얻기 위해 꾸준히 낭독회를 진행했다.

13세기 말 단테는 ‘일반 대중의 언어’ 즉 지방 고유의 말이야 말로 라틴어보다 훨씬 더 고귀하다면서 그 이유를 3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에덴동산의 아담이 사용했던 최초의 언어라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라틴어의 경우 학교에서 배워야만 하기 때문에 ‘인공적인’ 반면 지방의 고유 언어는 자연스럽다는 점, 마지막으로 극소수만 말하는 라틴어와는 달리 지방언어는 모든 사람에 의해 두루 쓰이기 때문에 보편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단테는 이탈리아 동북구의 도시 라벤나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신곡>을 그토록 좋아하던 ‘지방언어’로 낭독하며 여유로운 말년을 즐겼다.

시인 조프리 초서 역시 자신의 작품을 청중들에게 읽어 주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초서의 문체는 고전적인 웅변가들의 기교, 구어체적인 표현, 음유시인 특유의 표현을 가미한 것이어서 지금 읽어도 시인의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초서의 청중들은 늘 귀를 통해 그의 시를 읽었고 이 때문에 압운, 가락, 반복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목소리 같은 장치들은 그의 시적 구성에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독서의 역사>의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은 “텍스트를 문자 형태로 확정지을 때는 그 작품을 다른 누군가가 낭독을 하든 청각적 기교를 고스란히 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말한다. 그런 이유를 바탕으로 큰 소리로 읽는 데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기호’들이 개발되었다.

프랑스의 희곡작가 몰리에르도 버릇처럼 자신의 희곡을 하녀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영국의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도 자신의 <비망록>에서 이렇게 논평했다.

“몰리에르가 자기 작품을 하녀에게 읽어주었다면 그 이유는 큰 소리로 읽는 행위만으로 자신의 작품을 작품 한 행 한 행에 집중시킴으로써 작품에 대한 판단을 좀 더 엄격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내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곤 한다. 그 낭독을 들을 상대방으로는 아무라도 좋겠지만 내가 신경 써야 할 만큼 영리한 인물이어서는 곤란하다. 나 혼자 읽을 때는 아무 결점이 보이지 않던 문장도 큰 소리로 읽으면 허점이 군데군데 눈에 띤다”

낭독의 이유가 ‘검열을 위한 것’ 일 때도 있었다. 장 자크 루소는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자신의 <고백록>을 출판 금지 당하자 1768년 기나긴 겨울 내내 파리의 귀족 집안을 드나들며 자신의 작품을 낭독했다. 어느 낭독회는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그의 낭독을 들었던 어느 인물의 전언에 따르면, 루소가 자기 아이들을 포기한 이유를 묘사하는 대목에 이르자 처음에는 당혹해했던 청중들도 비탄의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③편에서는 디킨즈의 ‘낭독회 여행’이 소개됩니다.)

(사진 = http://www.mystudios.com)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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