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45년엔 인간->기계, 기계->인간?
서기 2045년엔 인간->기계, 기계->인간?
  • 북데일리
  • 승인 2007.01.2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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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특이점이 온다>(김영사, 2005)의 저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이 시대의 저명한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이다. 책은 현재의 기술발전 속도로 25~40년 후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는데, 그때에 이르면 현재의 생물학적인 인류는 비생물학적인 기계로 대체될 운명을 맞게 된다고 주장한다.

제목이기도 한 특이점(사회경제적인 의미로 너머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단속적 변화가 이뤄지는 시점)이 앞으로의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얼마 남지 않은 근 미래에 인간이 기계가 된다는 주장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미치광이의 헛소리로 여겨질 것이지만, 저자의 명성을 볼 때 무시할 내용은 아니다. 세계적인 로봇공학자인 한스 모라벡이 한 말을 잠시 인용해본다.

“...왜 우리는 수십 년 전에, 저지대가 잠길 때, 컴퓨터가 산수나 기억 능력에서 인간을 추월하기 시작했을 때, 이런 식의 보고를 받지 못했을까? 사실 보고가 없진 않았다. 사람들은 수학자 수천 명을 모아둔 것보다 계산을 잘 하는 컴퓨터를 ‘거인의 뇌’라고 칭송했고, AI연구의 첫 세대를 열어젖혔다. 기계는 어떤 동물도 할 수 없는 것, 인간의 지능과 집중력과 오랜 연습이 필요한 작업을 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그 마법을 컴퓨터로부터 다시 빼앗아 올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언급은 컴퓨터로 대표되는 기계가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의 자리를 위협해 오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면 30~40년 후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커즈와일은 미래의 가장 혁신적인 기술인 GNR(유전공학, 나노기술, 로봇공학 및 인공지능)이 현재의 기술을 있게 한 수확 가속의 법칙(정보기술의 발전이 어느 시점에 이르면 기존의 속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현상)에 의해 인류 문명의 혁명적 전환을 요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책의 전반부는 이것의 입증을 위한 각종 수치들의 나열과 이론의 기반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놓치지 않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저자는 급격한 변화에 대해 느낄 사람들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기술혁명이 가져다 줄 혜택을 묘사하는데 주력하는데, GNR의 첫 번째, 유전공학은 암, 알츠하이머,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으로부터 인류를 벗어나게 하고, 게놈의 설계과정을 추적해서 만들어진 보다 강력한 육체는 궁극적으로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나노기술(10억분의 1미터를 뜻하는 나노미터 수준에서 물질을 조작하는 모든 기술의 총칭. 보통 100나노미터 미만의 조작을 하는 것을 뜻한다)은 이 세상을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만들 수 있으며, 인간에게 가장 신비로운 뇌의 진정한 실체를 밝혀줄 강력한 도구인데, 이것을 통해 뇌에 있는 수백조에 이르는 뉴런세포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고해상도로 보여줄 수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 인간의 인성을 파악해서 인간의 육체보다 훨씬 강력한 연산기계에 복사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로봇공학 및 인공지능은 생물학적 인류를 능가할 POSTHUMAN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가지고 있던 패러다임의 혁명적 수정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앞으로 30~40년 사이에 우리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고 한다.

수확가속의 법칙과 GNR로 대표되는 미래는 저자의 예측대로 죽음과 병, 기아가 사라지는 풍요로운 장밋빛 세상으로 흘러가게 될까? 여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GNR은 세상을 바꿀 엄청난 도구이긴 하지만 인류 문명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 존재론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의 몸속에 들어가서 병을 치료하고, 뇌의 움직임을 분석해 낼 수 있는 나노기술을 과연 인간이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 선마이크로시스템즈를 설립한 빌 조이는 “우리는 계획도, 통제력도, 브레이크도 없이 새로운 세기에 밀어붙여지고 있다...... 내가 생각할 때 단 하나의 현실적 대안은 기술을 포기하는 것이다. 너무 위험한 기술은 발전 속도를 제한하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지식은 추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나노기술과 같은 위험한 기술은 사용하지 말자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기술이 가져올지도 모를 위험에 대해, GNR이 가져올 발전이 약간의 부작용 때문에 지체되거나 퇴보해서는 안 되며, 그것을 억제할 경우 범죄국가나 테러조직에 의해 음성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반론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GNR은 서로 얽혀 있으므로 나노기술로 인해 생겨난 위험은 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을 통해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저자의 기술낙천주의는 많은 과학자들과 대중들에 의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아직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은 미래의 부정적인 모습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기술발전을 억제하는 것은 인류에게 커다란 손실이라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특이점이 도래할 2045년에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게 될까? 수확 가속의 법칙에 의해 정보기술은 인간의 뇌를 역분석 해서 재설계가 가능해지고, 생물학적인 뇌의 처리속도보다 100만 배 이상 강력해진 탄소 나노튜브로 만든 인공지능이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커즈와일은 현재 인간을 버전 1.0의 육체를 가졌다고 표현한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관계로 규정짓는데, 인공지능 전체주의자의 입장에서 인간의 육체는 현재와 같이 외부환경에 취약하고 결함이 많은 버전 1.0에서 생물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보다 강력한 하드웨어로 업그레이드한 버전 2.0으로 교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전면적인 비생물학적 존재인 버전 3.0으로 교체됨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버전 3.0의 육체는 저자에 의하면 생물학에 의한 진화과정의 종말이 아니라 20억년에 걸친 진화에 의해 첫 번째로 나타난 의식 있는 존재인 인류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비생물학적 존재로써 정의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버전 3.0의 육체는 극도로 발전된 분자나노기술로 인해 육체를 언제든지 원하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으며(필요하면 육체를 없애 버릴 수도 있다), 몰입형 가상현실로 움직이지 않고도 먼 곳에 있는 누구와도 접촉할 수 있고, 원하는 지식을 배우지 않고 컴퓨터를 통해 뇌로 직접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된다.

기술 공포증을 가진 일부의 사람들은 현재의 육체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겠지만 나노기술로 만들어진 강력한 버전3.0 육체를 가진 새로운 인류에게 창조활동과 상상력과 같은 정신적인 요소부터 육상, 수영과 같은 물리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그 격차가 너무 커서 상대조차 되지 않을 거라 한다. 인간-기계 문명은 빠른 속도로 기존에 가졌던 인간 사회의 문화 모두를 대체 할 것이고, 이 시점에 이르면 인간에 대해서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할 것이라고 한다.

30년~40년 사이에 비생물학적 지능이 생물학적 지능을 수십억 배 이상 압도하게 될 거라는 커즈와일의 예측에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철학자와 과학자를 괴롭혀 온 인간의 의식, 정체성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철학자 존 설은 “중국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방에 갇혀 있다. 방 안에는 중국어 문자들이 적힌 카드들과 중국어로 된 질문에 답하도록 구성된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다. 그 방이라는 시스템에 중국어 문자로 된 질문을 입력한다. 그러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중국어 문자로 적힌 출력으로 나온다. 프로그램이 매우 뛰어나서 질문에 대한 답만 봐서는 진짜 중국인이 대답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라고 하자. 그러나 방 안에 있는 사람이나 시스템을 구성하는 어떤 부품도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시스템 전체가 갖지 못한 무언가를 프로그램된 컴퓨터가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프로그램된 컴퓨터는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밝힌다.

중국어 방 유추를 통해 단순한 연산속도의 증가만으로 기계에게 의식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함을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존 설이 만들어 낸 가정자체에 처음부터 기계에는 의식 같은 게 있을리 없다는 편견이 들어가 있으며, 수확 가속의 법칙에 의해 인간의 뇌를 역분석해서 재설계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면,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인성, 지식, 감정을 컴퓨터의 연산을 통해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꿈은 아니라고 반론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류를 멸종시키려는 기계에 맞서 컴퓨터의 소스코드로 들어간 네오처럼, 인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뇌라고 하는 소스코드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의 문제에 있어서는 존 설과 커즈와일 두 사람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전체주의자라는 저자 역시 의식이 객관적으로 실체가 파악된 적이 없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나에게 의식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의식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상대와의 대화를 통해 의식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기계는 의식을 가질 수 없다는 존 설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저자의 의식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가장 잘못된 점은 이 세상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의식을 단순히 컴퓨터의 연산속도의 증가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단순함에 있는데, 양으로 질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디지털 방식의 컴퓨터가 아날로그 방식의 뇌를 모방할 수 있을까? 저자는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현재의 과학은 여기에 분명한 답을 줄 수 없다.

커즈와일은 인간의 육체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육체는 지능을 보호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며, 나노기술로 만들어질 보다 뛰어난 성능을 가진 연산기계로 대체되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이다. 특이점 이후에 기계에 수납된 지능은 지구를 벗어나서 우주로 뻗어나가게 되면서, `제2형‘ 문명(러시아 천문학자 N.S. 카르다셰프가 제안한 용어로써 자신이 속한 행성계 내 항성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전자파 복사 통신을 하는 문명)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예측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는데, 저자는 그 어떤 과학자보다 열린 마음으로 미래에 대한 예측을 과학자들도 감히 하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으로 그려내지만 이상하게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에 대해서만큼은 모든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부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외계 지적 생명체가 발견된 적이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SETI(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가 지금까지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외계 문명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까지 탐사범위가 넓지 않고 전자파만을 사용하기 때문인데, 지금까지와 다른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해 낸다면 외계 문명을 발견해 낼 가능성은 충분하다. 저자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는 이유를 추론해 보면, 인간만이 우주의 유일한 지적 생명체라는 과학을 넘어서는 종교적 믿음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인류 원리(우주가 생겨난 이유는 의식 있는 존재의 출현을 위해 필연적이며, 이러한 우주관에는 목적을 가진 지적 설계자가 필요함)를 통해 인류가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이며, 인간의 지능은 물리보다 강력하고 기계에 수납된 지능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주를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주장에 과학적인 요소는 전혀 없다. 그것은 과학을 초월하는 새로운 종교적 믿음으로 보인다.

의식 있는 기계의 출현, 인류원리를 통한 인간 지능이 가져올 우주의 변화, 외계 지적 생명체의 부정, GNR 이 가져올 존재론적 위협에 대해서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는 저자의 기술 낙관주의적 사고방식에는 쉽게 동의하기 힘들지만 근미래에 나타나게 될 새로운 인류의 모습은 정말 흥미롭다. 얼마 남지 않은 2045년에 생물학을 초월할 인간-기계 문명이 오게 될까?

커즈와일의 예측대로 온갖 기술적 난관들이 극복되고 현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지능을 가진 새로운 인류가 등장하는 유토피아, 아니면 나노기술과 인공지능에 의해 한순간에 인류라는 종이 지구에서 사라지게 되는 가능성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그의 예측대로 흘러가기를 바란다. 비록 저자의 사상이 현재의 윤리체계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급진적인 주장을 담고 있지만, 나의 정체성이 특이점 이후에도 변함없이 유지된다면 생물학적 육체에서 비생물학적 가상현실로의 변화에 대해 고민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순수 의식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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