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대가 전하는 아날로그적 상상력
디지털 세대가 전하는 아날로그적 상상력
  • 북데일리
  • 승인 2007.01.1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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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사이버공간에 난무하는 기호나 표식이 공중부양하는 것처럼 떠다니고 있는 시대다. 때론, 홍수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댓글에서 나만 소외된 듯 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이어령의 <디지로그>(생각의나무. 2006)를 보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만이 진정한 첨단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다양한 재료들이 얽혀 만들어지는 비빕밥과 같이 각각의 주체들이 어울려야 진정한 맛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자 이어령은 포크나 나이프처럼 건더기만 건져 올리는 서양식의 첨단 디지털만으로는 오감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국물과 건더기가 함께 상존하는 비빔밥의 참맛을 아는 자야 말로 21세기의 참된 리더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디지털 세대가 아날로그적인 사물을 통해 독자를 기발한 상상의 세계로 안내 하는 소설 <펭귄뉴스>(문학과지성사. 2006)는 무척 흥미롭게 읽히는 작품집이다.

단편 `무용지물박물관`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눈을 감으면 텔레비전보다 입체적으로 튀어 오르는 라디오를 좋아한다. 눈을 감고도 사물의 살아있는 형상을 느낄 수 있다는 색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다. `발명가 이눅씨의 설계도`에는 아주 특별한 발명가가 나온다. 새로운 물건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만을 발명한단다. 그가 고안해낸 발명품은 부화를 기다리는 알의 모습과 닮아있다.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에서 지도는 단순한 길을 안내하는 평면의 선이 아니다. 에스키모인이 만든 나무지도는 촉각과 상상력으로 읽는 지도다. 기억과 소리만으로 만든 영혼의 울림이 있는 지도라는 점에서 독특하게 읽힌다. `멍청한 유비쿼터스`의 컴퓨터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컴퓨터 안에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고 착각한다. 사이버의 공간에 떠밀려 인간의 기억력은 점점 쇠퇴해지고 포스트잇의 생산력만 늘린다고 비판하는 모습이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바나나주식회사`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똘똘 뭉친 작품.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주는 특별한 소설이다. 찰그랑거리는 자전거 소리에 몸을 맡기면 세상이 온통 내 소유가 된 듯 한 기분이 든다.

<펭귄뉴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첨단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사물을 내밀하게 관찰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작가 권중혁의 글솜씨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철철 넘치는 그의 시선을 관찰하다보면 쏠쏠한 재미가 느껴진다. 재기 넘치는 신예작가의 다음작품을 한껏 기대해본다.

[양진원 시민기자 yjwy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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