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일즈맨에게 듣는 고단한 삶 이야기
한 세일즈맨에게 듣는 고단한 삶 이야기
  • 북데일리
  • 승인 2007.01.1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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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자신을 얻고 점점 힘을 내어) 형님, 얼마나 근사합니까! 흡사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는 단단하고 거친 다이아몬드를 만져보는 것 같단 말씀이에요. 흔해빠진 약속과는 달라요. 그런 공수표는 아니거든요. 그것만 있으면 사정이 달라질 거예요. 비프란 놈은 절 우습게 알거든요. 하지만 장례식 땐 - (몸을 가누며) 그 장례식은 굉장할 겁니다. 메인, 메사추세츠, 버몬트, 뉴햄프셔등지에서 조객이 모여들겠죠. 구면들이 주에 따라 색다른 감찰을 달고 올게 아닙니까? - 그놈도 깜짝 놀랄 테죠. 그놈은 모른단 말씀이에요 - 제 이름이 유명하다는 걸 말입니다. 롱아일랜드, 뉴욕, 뉴저지, - 저를 모르는 살맛이 없거든요. 장례식 때야말로 그놈이 제 눈으로 보고서 알게 되겠죠. 아비가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말고요. 그놈, 충격을 받을 거예요.(pp.158-159)

누군가 말했다. 고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누구도 제대로 읽어보지는 않은 이야기라고.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범우사, 1999)이야말로 동시대(1949년에 초연되었다)의 소설에 비해서는 사람들이 덜 읽은 작품 일 것이다. 읽고 난 후에 어느 세일즈맨의 오열이 들리는 것 같아서 연극을 꼭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어느’ 세일즈맨의 이야기

<세일즈맨의 죽음>은 고전이지만 사실 지금 우리 사는 이야기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뉴스에서는 연신 집값이야기를 하며 몇 십 년을 성실히 일하면서 살았는데 집한채 가진 것이 없다는, 내 인생이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희곡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이 났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한창 잘 나가던 시기를 뒤돌아보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수십 년을 납부하고도 아직 한 달이나 남은 집 한 채, 할부기간이 끝나면 고장 나서 못쓰게 되는 냉장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야하고 돈을 내야하고 또 바꿔야 하는 이 시대. 그는 자신의 삶에 지쳤다. 이젠 젊은 시절의 왕성한 의욕도 없고, 무엇보다 삶이 너무 피곤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가족을 돌아본다.

부인인 린다는 그를 걱정하기에 바쁘고, 그를 붙잡고 생활 걱정하기에 바쁘다. 그의 두 아들은 아버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이들도 못 되었다. 그는 두 아들을 항상 남에게 자랑하며 버젓한 능력 있는 녀석들이라 말하지만 두 아들은 평범하지도 않다. 린다는 모르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이야기까지 극 막판에 밝혀지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어느 세일즈맨은 이제 직장에서도 쫓겨난 판이다. 그에게는 삶이 너무나 피곤하다.

1949년 그 경제 호황기에 어느 연극

이 희곡은 1949년에 초연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5년 2차 대전이 종전을 하고 난 후 전후 황금기를 구가하기 시작했을 그 시점에 왜 아서 밀러는 이런 희곡을 내놓았을 지를 생각했다. 전쟁이 이룩해놓은 새로운 기술이 마구 현실에 도입되어 가희 물질문명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그 시대에 그와 로라는 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에 불평하는 것인가. 끊임없이 바꾸어야 하는 가전제품과 평생을 부담했지만 아직도 한 달이나 남은 대출자금까지. 상당히 누구 이야기 같지 않은가?

월리는 극에서 자신의 선배 세일즈맨의 죽음에 대한 환상과 동경을 품고 있었다. 세일즈맨의 죽음에 여기저기에서 조문을 위해 몰려드는 사람을 보면서 그는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자신도 그런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죽음을 맞지 못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보험금을 남겨놓고 아들과 화해를 한 이후에 자살을 하게 되고, 그런 죽음 뒤에도 꿈꾸던 장례식을 맞지 못한다. 자신의 꿈 중에서 그 무엇도 제대로 이룬 것이 없었던 셈이다. 물질적으로도 부족했고, 정신적으로는 피폐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마지막 윌리의 오열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자신의 동반자에게 린다에게 무슨 말을 들을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그 경제 호황기에 부족할 것이 없던 시대에 이런 희곡을 써낸 작가 아서 밀러. 그를 더 자세히 만나보고 싶다.

[이경미 시민기자 likedream@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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