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여지없이 깨버린 `밑줄 긋는 남자`
상상을 여지없이 깨버린 `밑줄 긋는 남자`
  • 북데일리
  • 승인 2007.01.0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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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의 부제는 밑줄 긋는 남자이다. 모텔레비젼 프로그램은 `책 읽어주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책을 소개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그리고 왠지 모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제목은 나뿐만이 아니라 당신에게도 호기심을 선사할 것이다.

먼저 장 레몽의 <책 읽어주는 여자>로 스타트를 끊었다. 무엇인가를 소리 내어 읽는 행위, 그 행위는 그 자체로 충분하지만 또한 위험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일상에 무료함에 지친 한 여자가 소일거리로 소위 우리로 말하면 아르바이트로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주려하고 그 책 읽어주는 소리를 원하는 병약한 사춘기의 소년과 말량괄이 어린소녀, 그리고 유물사상에 젖어 있는 한 노파와 외로움에 치를 떠는 사장, 이제는 퇴직한 판사 사이의 이야기들이 풀어나와 주인공의 의도와는 사뭇 다르게 흘러가는 내용전개에 나는 유쾌한 웃음을 던질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밑줄 긋는 남자>를 읽었다. 사실 여름부터 앉고서 펴보아야 하는 상황마다 망설였던 책이다. 책을 펼쳐든 그 후에도 결말을 며칠씩이나 미루어두며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토록 이 책 읽기를 미뤄둔 이유는 무엇일까? 밑줄 긋는 남자는 과연 어떤 남자일까? 그 남자는 어떤 대목에 밑줄을 그어 나갈까? 밑줄은 이야기 속에서 어떤 작용을 할까? 왜 밑줄을 그을까? 등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2006년도 마지막까지 남겨둔 이 이야기는 2006년 마지막 읽은 책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제목 하나만으로 갖가지 스토리를 만들게 내버려둔 이 책은 주인공부터 내 상상을 벗어나 버렸다.

주인공은 25살의 `나`, 책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로맹 가리`에 푹 미쳐있는 `나`, 그가 `에밀 아자르`, 시니발디, 보가트 등등의 필명으로 활약하고 그렇게 펴낸 책이 총 31권 밖에 안 됨을 알고 일 년에 한권씩 그의 책을 읽기로 결심한 `나`이다. 하지만 일 년에 한권씩 읽고 그 책을 다 읽은 쉰다섯 살부터 무슨 낙으로 세상을 살까를 고민하는 `나`이다.

이렇게 한 작가에게 푹 빠져있는 그녀는 새로운 로망을 찾기 위해서 도서관에 회원가입을 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밑줄 긋는 남자에게 가까워진다. 바로 그녀가 대출한 책에 밑줄 그은 남자의 흔적을 보는 것. 책의 흔적은 <오렌지 빛>을 시작으로 <노름꾼>, <이방의 여인> 등등등 책들을 지나간다.

이런, 나는 당신이 아름다운 여자인지 아닌지 그것조차 모르고 있군요.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만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에겐 당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내게 순종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점점 밑줄 긋는 남자에게 빠져든다. 마치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것처럼... 급기야 `나`는 그와 밑줄로 대화하기 시작한다.

그 사람 : 미지의 내 아름다운 여인이여, 그대의 모습을 보여 주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어쩌면 그대는 이미 여기에 와 있을 것이요.. 그대의 모습을 드러내 주오.

나: 우리는 서로 사귀었고, 우리의 사귐은 묘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그에 밑줄에 `나`의 밑줄을 더하는 것. `나`는 그 남자가 궁금해 미치겠다. 왜 그는 이렇게 밑줄만 남겨놓고 그는 나타나지 않을까?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언제부터 `나`를 바라본 걸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나`에 이입되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그녀라도 되는 양, 그의 존재를 헤매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을 책을 덮은 채로 그에 대해서 상상해 대기 시작했다. 나와 `나`는 사실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 뒷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궁금하다면 책을 보기를 권한다. 며칠 뜸을 들이다 현실로 돌아오기 싫어 밍기적거리다가 2007년 새해 첫날의 올해는 해치워야 하는 계획 일순위로 책 뒷부분 읽기에 돌입했다. 종일 꿈틀대다 이제야 본 결말은 단 하나. 부제가 <밑줄 긋는 남자인>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와는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티브만 따온 영화와 비교할걸 비교해야지 싶을 정도로 결말은 180도 나의 희망만을 부추기고 있으니 말이다.

2006년 정작 7개월을 부러 늑장을 부리던 책을 읽어 해치웠다. 제목만으로도 상상에 상상을 부추기는 책은 몇 되지 않는다. 2007년은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제목으로 상상놀이를 하며 보내련다. 꿈꾸듯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현실에 너무 가까워지지 말 것. 2007년도 책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타보련다.

(사진 =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스틸컷)

[장하연 시민기자 xx200020@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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