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 삼각관계 풀어내는 `살인적 문체`
황당 삼각관계 풀어내는 `살인적 문체`
  • 북데일리
  • 승인 2007.01.0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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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드는 유혹은 이것을 영화로 옮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다. <태양을 바라보며>(열린책들, 2005)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통해서 생의 시작과 끝을 그리고 있는 매우 서정적이면서도 포스트모던한 소설이다.

또 다른 작품 <내 말 좀 들어봐>(열린책들, 2005)는 “이처럼 현혹적인 사유와 문체를 펼쳐 보이는 작가는 흔치 않다”는 한 리뷰의 평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문체를 선보인다. 영화에 비유한다면 스페인 영화 감독 루이스 브뉘엘의 작품인 ‘욕망의 모호한 대상’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 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세작품의 공통된 주제가 있다면 ‘관점에 따른 해석의 차이’와 ‘거짓말의 난립’이다.

소설의 주요인물은 스튜어트와 그의 아내 질리언 그리고 스튜어트의 친구이자 질리언을 흠모하는 올리버. 고리타분하고 연애라고는 해본적도 없는 소심하기 짝이 없는 사내 스튜어트는 어느 날 파티에서 와인을 마시다가 질리언을 만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데이트를 거쳐 질리언과 결혼에 성공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결혼식장에서 그녀를 본 스튜어트의 불알 친구 올리버는 질리언에게 반해버린다. 올리버도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스튜어트는 사랑의 힘으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올리버를 걱정하기만 하고 질리언은 갑작스레 고백해 오는 올리버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 소설은 이렇게 황당한 삼각관계를 그려내면서 촌철살인적인 문체들을 선사한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에는 행위의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소설의 시점은 계속해서 변한다. 스튜어트에서 질리언으로 질리언에서 올리버로 올리버에서 다시 스튜어트로. 일면 희곡적인 양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행동이 없다. - 오로지 생각과 목격한 것은 회상한다 - 이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났던 사건을 회고하고 주관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미묘한 감정의 대립과 하나의 사건이 가지는 다양한 해석들이 난립한다. 인물들은 사건의 주체가 되는 듯하지만 탈주체화 되어 목격자가 된다. 하지만 목격자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사건들은 사건의 편린들을 모으고 그 이미지들을 확대해석한 것처럼 일그러지고 왜곡된다.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의 급격한 반전이 가져다주는 통렬함도 매력이다. 질리언의 태도변화가 그 중 하나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무감각하던 그녀가 올리버의 고백에 흔들리는 부분부터 소설은 가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흥미진진한 반전과 관점의 대립, 계속되는 거짓말들이 재미를 더 해준다.

줄리언 반스는 “사람들은 눈으로 봤다는 듯이 거짓말한다”는 러시아 격언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 가지는 다양한 해석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모든 사건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오독과 오해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유약함을 대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피하고 싶을 때 거짓말을 한다. 진실 앞에 당당하지 못하거나 그 진실과 맞설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말의 그림자 속으로 숨으려고 한다. 그것을 진실인양 혹은 목격한 것처럼 꾸며대고 말이다. 거짓말을 앞세워서 인간의 내면심리를 정교하게 파고들어가는 <내 말 좀 들어봐>. 현대인이라면 놓치지 말고 읽어봐야 할 소설이다.

[이도훈 시민기자 mbc79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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