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가 돼버린 한국의 고교생
`돼지고기`가 돼버린 한국의 고교생
  • 북데일리
  • 승인 2005.08.29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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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입시구조가 청소년들의 감수성을 몽땅 빼앗고 있다."

최근 열린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심사위원단은 한국 청소년들이 외국 청소년들의 작품에 비해 감수성이나 다양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아쉬워하면서 그 원인을 현행 입시제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평론가 김윤아씨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작품 대부분의 주제가 힘들고 괴로운 현실이었으며 이는 청소년 개인의 문제이기 이전에 구조적인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5월 광화문 네거리는 춧불을 든 고교생으로 넘쳐났다. 이날 집회는 성적비관으로 자살을 선택했던 어린 영혼들을 달래는 추모제였음과 동시에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정체성을 인정받으려는 몸짓 그 자체였다.

그들은 외쳤다.

"학생도 인간이다" "4월 한달 동안 10명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했다" "결석한 친구에게 공책을 빌려줄 수 없는 그야말로 친구와 적이 되어야 하는 상황을 참을 수 없다"

추모제에서 참가학생들은 입시 경쟁 위주의 교육 반대, 내신등급제 폐지, 교육 당사자인 학생 의견 반영 등 모두 세 가지 요구을 모아 교육부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하루에 한 명씩 자살하는 현실 속에서 학생들은 이제 `돼지고기`가 되어 내신등급제로 구분된 뒤 순서대로 이 학교, 저 학교로 보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돼지고기냐? 내신 등급제 하게!`(2005. 간디서원)는 현행 입시교육의 암울한 사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저자 정민걸(공주대 교수)의 경험을 통해 펼쳐진 고교생의 세계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행복은 성적 순이었다.

오직 대학합격이라는 목표 하에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을 보내야 한다. 실수로 여학생에게 말이라도 걸었다가 들키면 그날로 학교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야간자율학습은 `야자`라는 신종 단축어를 탄생시키며 학생들을 학교 아닌 수용소에 가둔다.

한창 꿈을 키워야 할 학생들이 성적을 비관해 자살이라도 하면 교육 관계자들은 오히려 그 희생양을 나무란다.

"입시제도를 잘못 이해했다" "고등학교 정상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무난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다" "어른들도 다 겪어왔는데 왜 너희들은 참지 못하느냐" 는 등의 궤변을 쏟아놓으면서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학생들에게 다시 책을 파고들라고 다그친다.

정 교수는 "교육부가 대학입시를 관리하겠다는 발상을 버리고 각 대학교별로 제대로 된 자유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 학교, 학생마다 성적편차가 존재하는 현실하에서 수준별 수업이 아니라 수준별 학교를 만들어 공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학교에서 지도하기 어려운 논술이나 대학별 심층면접 도입 등으로 사교육은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으며 이는 결국 돈 있는 집안의 자녀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차라리 대학별 본고사를 부활시키는 것이 평등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며 본고사 형태도 단순하게 만들어 정상적인 학교 수업만으로도 누구든지 시험을 치르는 데 무리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 교수의 걱정은 대학 입시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 졸업 후에 찾아오는 취업 몸살과 그 중심에 서 있는 영어 스트레스가 또 다시 생존 전쟁의 연속 임을 설명한다.

학벌로 사람을 분리하더니 이제는 토익으로 실력을 차별한다. 한때 중국이 `미친 영어` 운운하며 난리를 쳤는데 우리 나라는 아예 영어에 미쳐버린 나라가 되어버렸다. 욕도 영어로 하면 무죄요, 영어를 배우려고 그 아까운 돈을 미국으로 영국으로 쏟아버리고 있다.

미국유학 경험이 있는 저자는 "영어회화는 기본패턴과 쓰임새만 알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으며 정말 중요한 것은 영어권 문화에서 필요한 생활태도와 예의범절이다"라고 지적한다.

책은 유학생에 대한 특별 대우와 EBS 과외를 부추기는 교육부의 모순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는 동시에 원정 출산, 국적 포기, 억지 유학의 실태까지 함께 분석함으로써 한국 교육의 실정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반면 최근 부산에서 시도되고 있는 독서인증 쿠폰, 무학년제 수준별 보충수업과 논술 학당 운영 등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교육 혁명에 대한 내용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사진 = 1.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포스터 2. 국내 모학교에서 체벌받는 학생들, 출처 한교매) [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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