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처럼` 아낌없이 주는 느티나무
`아버지처럼` 아낌없이 주는 느티나무
  • 북데일리
  • 승인 2005.08.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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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쉘 실버 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소담출판사, 1991)는 모든 것을 어떤 한 소년에게 다 내어주는 이야기다. 글과 그림이 잘 어우러진 이 철학적 동화에서 나무는 소년에게 놀이터와 그늘이 되어주고, 가구가 되어주고 나중에는 몸통째 배로 내주어 세상을 돌아다니도록 자기 몸을 희생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허리가 굽어 찾아온 늙은(?) 소년에게 쉴 자리로 밑둥까지 내준다.

다니구치 지로는 최근 몇 년 사이 `아버지`(원제 아버지의 달력-애니북스-2005), `열 네 살`(원제-머나먼 고향-샘터-2004)로 세계적인 만화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일본의 만화가다. 그의 작품 `아버지`는 2001년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에서 `전 크리스트 협회상`과 스페인 국제만화 페스티벌에서 세 개의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3년에는 `열네 살`로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에서 `베스트 시나리오상`을 수상했다.

다니구치 지로의 새로운 작품 `느티나무의 선물`(샘터, 2005)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우쓰미 류이치로의 동명소설을 만화로 재해석한 단편집으로 총 8편이 실려 있다. 이 중 표제작인 `느티나무의 선물`은 나무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마음을 뺏긴 이야기다.

주인공은 퇴직후 한가로운 인생을 즐기려 시골의 새 집으로 이사, 전원생활을 시작한 하라다씨 부부. 새 집의 정원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휘날려 빗물통을 막는다는 이웃들의 거센 항의를 받자 나무를 자르기로 결심한다.

그때 옛주인이 나타나 그 나무는 집을 팔기 전까지 그들에게 그늘이었고, 시계였으며, 일기예보였노라고 말한다. 나뭇잎이 온 동네에 휘날리는 것은 청소를 해야할 때라는 것을 동네에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자신들보다 이곳에 먼저 와 산 나무가 주인이나 마찬가진데, 주인을 쫓지 말라고 충고한다.

나무를 베러온 사내는 `나무의 영혼`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무는 마당에 그냥 서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한다고 말한다. `고집불통 영감`마냥 뻣뻣이 서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불만을 알아듣고 표 나지 않게 고쳐나가려고 노력한다고 전해준다. 그래서 사람들의 불만이 커질 수록 더 아름다운 새싹을 피워낸다고 한다. 하라다씨는 그 말을 듣고 느티나무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는 결국 나무를 베지 않기로 결심을 한다. 그 자신이 융통성 없는 `고집불통 영감`이 되어 느티나무가 주는 선물을 지키기로 하는 것이다.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은 단정한 흑백의 터치와 분명한 입체감으로 회화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문학적인 색채가 농후한 게 특징이다. 그는 일본의 기업화된 만화 시스템인 주류장르에서 비켜 서있는 독립적인 작가다. 하지만 삶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굳건한 무게감과 감동으로 자국보다는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에서 더 각광받는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15년 동안 떠나온 고향을 찾아가는 `아버지`와 40대 후반 중년의 한 남자가 어느 날 자신의 14세 시절로 돌아가는 `열 네 살`이 고향의 의미, 가족 안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것들이 무엇인가를 찾아내 가슴을 흔들었다면, `느티나무의 선물`은 더 넓어지고 더 따뜻해진 시선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 작품집의 주인공들이 대개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고 상대가 젊은이들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90년대 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노인문제 즉, 세대간의 갈등이 `열쇳말`이다. 넓어진 시선으로 그려낸 인간에 대한 애정, 가정의 불화, 갈곳 없는 노인들의 외로움 등이 과장 없으면서도 예리하게 와닿는다.

자기 자신보다 남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아무 조건 없이 주는 나무. 그러나 이 작품집의 느티나무는 만화 평론가 박석환의 말처럼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기보다는 소통과 이해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나무로 봐야 한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주고받았던 대화들처럼, 고통을 느끼면서도 서로 말하지 못하던 장벽을 걷어내 주는 나무. 다니구치 지로의 `느티나무`는 서로를 감싸는 화해 과정을 통해 조금씩 젖어들듯 가슴이 따뜻해지는 `선물`의 나무다.[북데일리 박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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