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아름다움, 그 `변주`의 끝은 어디인가
인체의 아름다움, 그 `변주`의 끝은 어디인가
  • 북데일리
  • 승인 2006.12.05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데일리] 미스 코리아나 기타 미인선발대회를 하면 반드시 순위를 가려야 하기 때문에 심사하는 사람은 후보자들을 채점한다. 그렇다면 심사위원들은 후보자의 얼굴이나 몸매에 관하여 어떤 채점 기준을 가지고 있을까? 아마도 이러한 기준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눈의 가로세로 비율이 1:0.3은 몇 점이고, 얼굴의 가로와 세로 비율, 혹은 허리와 히프의 비율을 가지고 몇 점으로 한다는 기준은 없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기준이 있다면 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즉 전체적인 균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부분만 채점한다면 그 결과는 황당하게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름다움을 이렇게 객관적으로 수치화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이기도 하다. 차라리 생물학에서 말하는 동물들의 짝짓기 선택의 기준에서 중요한 요인이 ‘몸의 균형’이라는 말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인간의 몸이란 오랜 기간 동안 환경과 적응하면서 자연선택 된 결과이며, 또 배우자의 선호인 성선택 결과이다. 자연선택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고 성선택은 생식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상호 겹치는 부분도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생존이나 생식방법이 예전하고 지금은 다른 부분이 많을 것이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생존과 생식을 위해서는 강인한 체력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강인한 체력도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

일단 육체 노동이 산업사회 이후로는 그 중요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보화 사회인 요즘은 육체적 강인함 보다는 오히려 지적 강인함이 더욱 필요한 시기이다. 지적인 사람이 더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시대에 따라 선호되는 육체는 다르다고 생각이 된다. 또 시간뿐만이 아니라 공간에 따라서도 다른 점이 충분히 있다고 보여 진다. 이를테면 농경사회와 유목사회는 생활방식이 전혀 다르기에 그 기준 또한 차이가 있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고, 또 시간과 공간 이외에도 개인적인 선호의 차이도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아름다운 얼굴의 기준은 서양 백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즉 앞에서 보았을 때의 얼굴의 넓이가 옆에서 보았을 때의 넓이 보다 좁은 스타일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것은 시대에 따라 그 기준이 변한 것이다. 이 책 <우리 몸과 미술>(사계절. 2001)에 나와 있듯이 서양에서 조차도 넓적한 얼굴을 잘 생긴 것으로 인정했다. 지금같이 좁은 얼굴을 선호한 것은 불과 200년 전부터라고 한다. 유럽의 고전 영화를 보면 유럽인들은 가발을 쓴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얼굴을 크게 보이게 하려는 것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얼굴이 크다는 의미는 몸도 크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할 것이고, 몸이 크다는 것은 근육의 힘이 강해서 생존에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사회 이전의 사회에서는 근육의 힘이 중요 했을 것이니 큰 얼굴이 아름다움이나 선택의 기준이었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근육의 힘이 인간의 삶에 있어서 덜 중요해진 지금은 큰 얼굴은 오히려 비호감의 표시이다. 이처럼 서구적 가치를 지향함에 따라 백인 스타일의 얼굴을 가진 예술품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는 사항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인형들의 모습을 보면 거의가 백인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다빈치의 그 유명한 모나리자는 눈썹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회화에서도 보면 여성의 얼굴에서 눈썹이 흐리게 표현되어 있고, 당나라 시대의 그림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부분은 관능미 보다는 모성미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한다. 즉 모나리자의 모습 속에는 성모 마리아적 표현이 가미되어 있기에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이 책의 <얼굴화장의 원리>란 제목의 장에 나와 있다.

이 책에는 얼굴, 두개골, 몸통, 팔다리, 옷(복식), 얼굴 화장, 눈, 코, 유방 등 인체의 부분과 또한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와 예술적 아름다움과 과학적 아름다움을 대비시켜 설명하는 등 우리의 몸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많은 사진과 그림을 내용 중간에 넣어 독자들에게 재미있고 도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동양화를 전공하고는 의대에서 인체해부학을 7년 동안 연구한 학자이다. 참 이채로운 경력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이런 경력이 없었다면 이렇게 인체와 미학을 연계한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이 책에는 우리 몸의 여러 부분을 해부한 그림들이 많이 들어있다. 그림과 내용을 읽으며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기도 하고, 또 새로운 사실에 즐거워하며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출판된 지 오 년이나 지난 책이다. 그러나 데스몬드 모리스의 <벌거벗은 여자>를 읽고는 우리 몸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생긴 내게 얼마 전 서점에 갔을 때 눈에 보였다. 그리고 함께 구매한 책이 <몸,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푸른숲. 2006)이다.

이 책에서 보면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어원을 가지고 각국에서 사용되는 의미를 해석하고 있는 내용은 상당히 흥미롭다.

“중국에서는 미각적으로 좋은 것 또는 희생정신과 같이 도덕적인 것을 뜻하는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촉각적인 풍부함이나 지적인 것 또는 가련한 것을 뜻하고, 일본은 위생적인 것을 뜻해 이들 사이에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영어의 `beauty`에도 어원적 의미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좋다(善)는 뜻이요 하나는 당당하다는 뜻이다.” (194쪽)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내 주관적인 기준도 있지만 우리는 객관적인 기준 즉,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너무 깊숙이 빠져 있지는 않나 하고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여자들의 화장이나 유행하는 옷을 보면 어떤 상업적인 패턴 속에 개성은 사라져 버린 모습이니 말이다. 나도 이러한 몰개성적인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북데일리 이동환 시민기자 eehwan@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