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빼앗긴 영혼은 잠들지 못한다
그 섬에 빼앗긴 영혼은 잠들지 못한다
  • 북데일리
  • 승인 2006.08.0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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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빼앗긴 영혼은 잠들지 못한다.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 2004)에서 만난, 장인 정신을 발휘하는 숨은 인재들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난다. 어느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미치지 않고서야 그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저자 정민(한양대 교수)은 책을 통해 순 가짜들이 그럴듯한 간판으로 진짜 행세를 하고 근성도 없는 자칭 전문가들이 기득권의 우산 아래서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고 일갈했다.

마찬가지로 사진작가 고(故) 김영갑은 철저히 혼자서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혼자 사진작가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 온 사람이다.

마흔여덟 평생, 자신의 길을 위해 결혼도 행복도 모두 포기하고 고집스럽게 카메라 셔터만 눌렀다. 끼니를 굶고서라도 필름이나 인화지는 반드시 구입을 하며 자신만의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 2004년 펴낸 사진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휴먼&북스)에는 그의 마음과 혼을 담았다.

그리고 예술가의 길을 걸으며 투병생활 6년만인 2005년 5월 29일, 두모악 갤러리에서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찰나의 포착`을 위해 20년 넘게 제주도의 비경에 빠져 헤어나지 않고, 결국 제주도의 혼이 되어서 그 산야에 묻혔다.

사진에 대한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그의 사진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감동을 전해준다. 오체투지를 하는 구도자처럼 치열한 삶의 기록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한다. 순간의 황홀감을 만끽하기 위해 자연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 모습을 처절하게 기다려야 좋은 사진이 나온다고 한다.

그의 사진에는 제목도 없고 어떤 선입견도 배제한다. 순수하게 자연의 몫으로 바라보고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자의 몫으로 돌린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꿈꾸는 듯한 영혼이 꿈틀거린다.

정지된 사물을 찍지만 그의 사진에서는 모든 자연의 정령이 되살아 나서 산과 바다를 하늘거리며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절대고독 속에서 피어나는 황홀한 풍경을 만든다.

자신의 혼이 투입되어 물상과 작가의 자아가 만나서 환상적인 작품이 탄생한다. 천재는 하늘도 시기하고 땅도 시기한다. 시련은 또다른 천재를 탄생시킨다.

불치의 병, 루게릭병으로 판정받고 난 뒤 모두가 절망하고 포기하는 순간에도 그는 사지를 움직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갤러리라는 마지막 선물을 준비한다.

누구를 보여 주기 위해 사진을 찍지 않은 작가이지만 이제 남은 자에게 자신의 작품을 남기고 떠날준비를 한다. 평생 찍어온 자신의 작품을 폐교가 된 학교를 임대하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준비하였다.

불치병에 걸려서 고통받는 순간에서도 항홀감에 빠져서 갤러리 작업을 놓치 않았다. 그는 남긴 사진을 통해 영혼의 구원을 꿈꾸면서 제주도의 자연으로 돌아갔다.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유작이 있는 갤러리를 찾아간다.

그의 불굴의 혼이 가득한 갤러리를 꼭 구경하고 싶다. 철저한 고독 속에서 카메라 하나로 세상의 혼을 담고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진정한 예술가를 만나고 싶다. 도처에 사람은 많지만 진정한 자유인을 만나고 싶다면 제주도로 한번 건너가야겠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그의 영혼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북데일리 양진원 시민기자] yjwy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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