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쓰기의 시작은 열등감의 극복”
“내 글쓰기의 시작은 열등감의 극복”
  • 북데일리
  • 승인 2006.07.2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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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조영아

굴착기 철거작업으로 분주한 서울시 은평구 진관외동. `리조트 같은 생태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서울시의 결연한 각오로 뉴타운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20년간 살아온 소설가 조영아(40)는 매일 오가던 길과 집, 가족처럼 마주하던 이웃이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며 옥탑방 컨테이너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자신이 다니던 유치원이 부서지자 슬픔을 감추지 못하던 딸아이에게 여우 한 마리를 선물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제목을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라고 붙였다.

그에겐 난생 처음 도전하는 장편소설이었다. 다리에 쇠못을 박은 후 TV드라마 폐인이 되어버린 아버지, 불구가 된 아버지 때문에 트럭운전수가 된 어머니, 눈을 밥처럼 집어 삼키는 지체장애아 형,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주인공 ‘나’라는 밑반찬을 만들어냈다.

본격적인 상차림은 올 초부터 시작되었다. `놀아 달라`고 보채는 두 딸의 간절한 ‘구조요청’까지 뿌리치며 독하게 써댄 글이 원고지 1천매의 장편으로 묶이기까지 꼬박 3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완성한 작품을 한겨레 문학상 마감일 전날에 턱걸이로 응모했다. 시간에 쫓겨 빠듯하게 써내려 간 글이었기에 수상은 꿈조차 꾸지 않았다.

응모 사실까지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당선소식을 알리는 ‘믿을 수 없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10년 넘게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 평범하게 살아오던 전업주부 조영아가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라는 이력을 달게 된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한겨레출판. 2006)의 신인작가 조영아는 문단과 독자가 ‘쌍수로’ 환영해야 할 반가운 신예다. 탄탄한 이야기와 따뜻한 시선을 가진 신인이 출현은 한국문단에 오랜만에 찾아온 귀한 손님의 등장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얼굴에서 수상의 기쁨은 쉽게 엿보이지 않았다. 들릴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수상소감을 읊조리는 그의 입은 작지만 야무져 보였다.

“기대도 안했는데 받게 돼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담도 됩니다”

인터뷰 내내 작가는 작게 답하고 옅게 웃었다.

서울여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2005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조영아는 서울 인사동의 ‘소설대학’에서 소설을 배웠다.

“살림을 하면서도 마음은 항상 글밭에 가 있었습니다. 소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고 소설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요”

소설대학 이야기를 꺼내면서 작가는 지난했던 글쓰기 과정을 물끄러미 되돌아보는 듯 했다. 대학에서도 시만 썼고 습작 시절에도 소설 아닌 동화부터 썼다는 그는 “시에서 동화, 동화에서 소설로 넘어 온 것이 다행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시만 쓰던 제가 원고지 1천매짜리 장편소설을 어떻게 마쳤겠습니까. 동화는 소설로 넘어가기 위한 자연스런 과도기였던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동화는 물론 단편, 중편 습작을 거듭하며 신춘문예와 각종 문학상에 도전했지만 최종심에만 오를 뿐 수상은 하지 못했다는 그의 말은 부단한 글쓰기의 수련 과정을 증거했다.

제목을 생각 한 후, 구성을 끝낸 후에야 글을 시작할 수 있다는 그는 주변으로부터 ‘완벽주의자’라는 평을 자주 듣는단다. 단편을 쓸 때도 구성을 완벽하게 마쳐야 집필이 가능한 타입이라고. 3개월 만에 1천매를 끝낼 수 있었던 것도 인물과 스토리를 세심하게 짜놓은 탄탄한 구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설의 화자를 13세 소년으로 설정한 이유는 딸아이의 나이와 같아서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늘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아이들의 눈에 비친 세계를 표현하는 일이 낯설지 만은 않았다.

쓸쓸함을 상징하는 존재 ‘여우’, 어린아이 지능을 갖고 있는 형 ‘모호면’, 색소폰을 부는 할아버지 ‘전인슈타인’, 등에 혹이 솟은 샛별문구 여자에서 발견되는 상징성을 언급하자 작가는 “익숙한 소재를 어떻게 하면 차별화 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었다고 답했다.

동그란 눈을 부릅뜨고 죽은 여우를 동물원에서 본 후로 `쓸쓸함`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나’는 옥탑방 지붕에서 노란 물탱크로, 물탱크위에서 다시 옥상으로 사뿐히 뛰어내리는 여우를 목격한다. 제 눈을 의심해 몇 번이고 눈을 비비던 소년은 생각한다.

“멀리 다른 별에서 우주에 떠도는 수많은 혹성을 징검다리 삼아 이곳에 온 게 아닐까. 그래서 돌아갈 길을 잃어버렸을지도. 고개를 치켜든 여우는 동물원에서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던 오래전 그 여우와 닮아 있었다. 여우는 쓸쓸했다” (본문 중)

작가는 소년의 눈에만 비치는 ‘여우’라는 존재를 통해 현대인의 결핍과, 아픔을 이야기 한다.

아버지가 TV드라마에 빠져 살게 된 것도, 어머니가 트럭 운전수, 포장마차 주인이 된 것도, 형이 지체장애를 앓게 된 것도, 샛별 문구 여주인의 등에 혹이 솟은 것도 모두 ‘작정’하고 된 것은 아니라는 소설의 따뜻한 어조는 눈시울을 적신다.

심사를 맡은 소설가 박범신은 “자본주의 경쟁이 폭발하고 있는 우리네 대도시의 어두운 이면을 핍진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아름답고 눈물겹고 쓸쓸하다”는 평을 덧붙였다.

작가는 여전히 수상결과가 믿기지 않는 듯 한 표정이었다. 침체되어 있던 글쓰기에 용기를 얻었다는 말만 조용히 읊조렸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당분간은 단편과 장편을 동시에 쓸 것”이라고 답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글을 쓰겠다”는 다부진 각오도 조심스레 이어 붙였다.

나이 마흔에 늦깎이 데뷔를 마친 소설가 조영아.

그녀는 “글쓰기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했다.

중편을 쓸 때는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매일 고시원에서 글을 썼고,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는 아이들이 잠든 때를 틈타 밤잠까지 줄여 가며 매일 10시간 이상 글을 썼다는 그의 ‘독기’는 글쓰기의 원천이다.

조용한 목소리와 달리 이미 새 작품 집필에 들어갔다는 그는 다부져 보였다.

그의 손끝에는 소설가로 비상을 꿈꾸던 시절, 침잠되어 가라앉을 뻔 하던 그 뜨거운 열망이 다시 용솟음치고 있다. 성실한 수련을 마치고 하산을 준비하는 작가 조영아. ‘좋은 소설’을 기대해 볼 만한 믿음직스러운 신인이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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