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뽀삐뽀 소아과’ 10년인기 `하정훈의 힘`
‘삐뽀삐뽀 소아과’ 10년인기 `하정훈의 힘`
  • 북데일리
  • 승인 2006.05.2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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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도서출판 그린비 김현경 주간

소아과 전문의 하정훈은 아이를 꼭 한번 데려가 보이고 싶은 의사, 상담하고 싶은 의사로 꼽히는 스타의사다.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하정훈이라는 존재는 거의 절대적이다.

개설 5년만에 1천만명 이상이 다녀간 그의 홈페이지 (www.babydoctor.co.kr)에는 연일 “우리아이가 000 증세가 있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하나요”라는 상담 글이 쏟아진다. 엄마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동호회도 활성화 되어 있다.

하정훈을 유명하게 만든 건 1997년에 첫 출간된 이래 10년이 된 지금까지 20만부 이상이 판매되며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아온 베스트셀러 <삐뽀삐뽀 119 소아과>(그린비. 2002)다.

엄마들 사이에서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이 책은 딱딱하고 어려웠던 기존 의학 관련 서적들의 편견을 깨뜨렸다. 재쇄마다 개정하는 꼼꼼한 저자로 소문난 하정훈, 의학상식이 바뀌고 예방접종이 바뀔 때마다 새 책을 만드는 것처럼 내용을 수정하고 추가하는 집요한 저자 하정훈. 책을 만든 도서출판 그린비의 김현경 주간은 “하정훈 선생님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저자는 처음 봤다”며 그의 학구열을 극찬했다.

1997년 첫 출간부터 지금까지 <삐뽀삐뽀 119 소아과>의 모든 기획과 개정작업, 편집을 맡아 진행한 김 주간이 하정훈을 만난 첫 순간부터 10년간 겪어온 개정작업 이야기를 들려줬다.

“꼼꼼한 저자, 더 꼼꼼한 출판사”

“3년 전 선생님 병원에 누전으로 불이 난적이 있었어요. 뒤늦게야 소식을 듣고 달려갔는데 선생님은 잿더미로 변한 병원 뒤에서 환자를 보고 있었어요. 매일 찾아오는 그 많은 엄마들과 아이들을 돌려보낼 수가 없어서 임시로 진료실을 마련했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결혼도 진료가 끝난 후에 하셨대요. 하늘이 무너지는 경우라도 선생님에게 1순위는 진료에요. 아이들을 진료 하는 일은 그에게 천직입니다”

김 주간이 들려준 믿기 힘든 일화는 사실이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소아과 전문의가 된 하정훈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는 성실한 의사로 정평이 나있다.

그린비의 유재건 대표가 저자 하정훈을 처음 발견한 것은 1995년. 어느 일간지에 조그맣게 난 기사를 보고나서였다.

PC통신 하이텔에서 제일 처음 육아상담을 시작한 의사 하정훈이 소개 된 짧은 인터넷에 들어가 확인 해 본 결과 여러 의사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일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상담내용을 다뤄온 소아과 전문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의사’하면 떠오르는 딱딱한 말투도 그의 상담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부드럽고 친절한 구어체 속에 빼곡히 들어있는 알찬 의학상식에 엄마들은 “고맙다”는 답글을 연발하고 있었다.

다음날 그와 통화하고 병원으로 찾아간 유 대표는 즉시 출판을 제의했다.

하정훈은 “책을 낼 생각은 있지만 공부를 더 해야 하기에 적어도 1년은 필요하다”고 했다. 유 대표는 망설임 없이 “기다리겠다”고 답했다. 이어 “원고를 다 주셔도 한두 달 안에 책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생님 상담내용을 봤더니 분량이 무척 많더라. 그걸 다 정리해서 제대로 된 책을 내려면 우리도 편집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문기사가 나간 뒤 몰려든 출판사 중 그린비처럼 “기다리겠다”고 말한 출판사는 없었다. 하정훈은 자신의 책을 제대로 만들어 줄 출판사라는 신뢰감을 느꼈고 출판을 결심했다.

책이 나온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97년. 저자 못지않게 꼼꼼하게 책을 만드는 출판사 그린비는 원고를 받은 후 수개월간 완성도 높은 육아서를 만들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자했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삐뽀삐뽀 119 소아과>가 탄생된 후 출판사 사정상 광고 한번 하지 못했고, 지면을 탄일도 없었는데도 책이 팔리기 시작했다. 오로지 입소문만으로 책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재쇄마다 새로 책 쓰는 저자”

김 주간은 책의 비약적인 판매는 2001년, 2002년부터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인터넷 환경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온라인 서점이 등장했고 서평문화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온라인을 통한 엄마들의 입소문을 타고 하정훈 소아과와 저자 하정훈의 존재는 더욱 유명해졌다. 어느새 <삐뽀삐뽀 119 소아과>는 ‘가장 실용적인 출산 선물’로 꼽히게 됐고 엄마들이 ‘옆구리에 끼고 사는 책’이라 불리고 있었다.

“하정훈 선생님의 홈페이지에는 책에 버금가는 방대한 분량의 자료들이 올라와 있어요. 엄마들은 아이들이 아플 때 선생님 사이트부터 들어와 본다고 해요. 인터넷으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의학상식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책 구매가 늘기 시작했어요. 저자에 대한 신뢰와 알찬 내용이 이 책을 스테디셀러로 만들었죠”

김 주간은 대대적인 광고한번 하지 않은 이 책이 10년간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요인은 저자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라고 했다.

아무리 신뢰받는 저자라 할지라도 10년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백과사전에 가까운 의학상식이 담긴 책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더욱 그렇다.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하정훈은 재쇄가 시작될 때마다 적게는 몇 십 페이지, 많게는 200페이지에 달하는 ‘교정’을 원했다. 의학상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내용을 추가하고 보완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특히, 수시로 바뀌는 예방접종 부분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감 가는 주장이었지만 책을 만드는 편집자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의학상식을 담은 육아서라는 이유로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꼼꼼함은 다른 책에 비해 그 무게가 비할 수 없는 정도였다.

“엄마들이 보고 따라하는 의학상식이기 때문에 실수가 있으면 안 된다는 전제가 늘 따라붙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전해주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이라도 미치게 된다면 그 책임은 모두 저자와 출판사가 감당해야 하니까요”

원래도 꼼꼼하기로 유명한 김 주간이지만 이 책을 만들 때만큼은 더욱 예민해졌다고. 그런 꼼꼼함을 거쳐 완성된 개정판이기에 10년간 꾸준한 사랑 받을 수 있었다.

“그때마다 저에게 자극을 준 것은 선생님의 공부하는 태도였어요. 하루 종일 진료를 본 후 저녁이 되면 세미나나 학회에 참석 할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공부하세요. 의학지식이 날로 발전하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늘 반성하게 됩니다”

끝없이 공부하는 저자 하정훈. 재쇄마다 완벽한 개정판을 원하는 그의 집요함은 엄마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해주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베스트셀러 저자에, 환자가 넘쳐나는 병원 원장으로 여유를 부릴 때도 됐건만 비싼 옷 한 벌 사 입지 않고 오로지 아이들을 돌보고 공부하는 일에만 전념하는 하정훈. 저자의 성실한 삶은 편집자에게도 좋은 자극이 됐다.

“청소년과 호흡하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그린비는 <삐뽀삐뽀 119 소아과>로 알려진 덕분에 육아서를 만드는 출판사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간 만들어온 책 목록을 보면 인문서가 대부분이다.

<철학과 굴뚝청소부>(그린비. 2005),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 2003),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그린비. 2003), <자본을 넘어선 자본>(그린비. 2004) 등은 그린비가 만들어온 대표적인 인문교양서들이다.

김 주간의 꿈은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인문서를 만드는 것이다.

“청소년을 이끌 수 있는,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새로운 글쓰기 방법을 제시하고도 싶고 독서를 유발 할 수 있는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김 주간은 편집자라는 직업이 천직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그녀. 다른 편집부에 비해 남성들이 많은 그린비이기에 “대접이 좋겠다”고 운을 떼니 “직급이 높아서 그런지 그렇지도 않다”며 수줍게 웃었다.

꼼꼼한 저자를 만나 힘들게 책을 만들었지만 그만큼 배운 것도 많았다는 편집자의 말을 통해, 베스트셀러 뒤에 숨겨진 저자와 편집자의 노고를 느낄 수 있었다.

500페이지에서 시작해 1000페이지가 넘는 개정판이 나오기까지 이들이 흘린 10년 간의 땀방울이 베스트셀러 <삐뽀삐뽀 119 소아과>를 탄생시켰다.

(사진 = 홍승호 편집과장, 김현경 주간, 유재건 대표, 박순기 편집부 대리, 이재원 편집장)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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