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TV 드라마 `불멸의 게시판`에서 선조는 원균과 함께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인물이다. `선조 임금님 실망` `염치도 없는 선조` `원균보다 더 나쁜 선조`라는 글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선조를 어찌 임금으로 인정하리`라는 흥분섞인 글도 적지 않다. 당시 `쿠데타가 일어났어야 한다`는 과격한 글도 나오는 상황이다.
선조에 대한 비난은 이순신에 대한 애정과 반비례한다. 이순신이 조정에 의해 파직당하고 고문당할 때 선조에 대한 비난 곡선은 급상승한다. 조정을 나눠 임진왜란을 지휘했던 아들 광해군과 대비된 점도 선조에 대한 인식이 나쁜 이유다.
그러나 과연 선조가 무능하고 권력욕에만 가득찬 임금이었을까? 역사책에서 본 선조는 드라마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 `개정판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 실록`(2004. 웅진지식하우스)엔 조선왕조 500년의 기록이 담겨 있다. 물론 선조에 대한 기록도 실렸다.
"선조는 흔히 임진왜란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왕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명종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외척정치를 없앴으며 신권 중심의 정치를 구현한 뛰어난 왕이었다."-271쪽
조선이 권신 정치에서 사림 정치로 바뀐 전환기는 선조 시대다. 그리고 그 다리를 놓은 인물은 임금인 선조였다. 풍부한 학식과 학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선비들을 가까이 한 게 바탕이 됐다.
"즉위 초년에는 오로지 학문에 정진하고 매일 경연에 나가 정치와 경사를 토론하였으며, 제자백가서 대부분을 섭렵하였다. 이에 따라 성리학적 왕도 정치의 신봉자가 되었으며, 정계에서 훈구, 척신 세력을 모두 밀어내고 사림의 명사들을 대거 등용하였다."-268쪽
"명종시대까지는 역모에 버금가는 행위로 간주되던 붕당 행위를 선조는 정치적 개념으로 적극 수용해 보다 발전적인 당파 정치로 이끌고자 하였다...선조가 구상했던 당파 중심의 신권정치는 근대적 정치 형태인 의회정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될 수도 있었다."-271쪽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선조가 보인 태도는 모범적이다. 스스로 모범이 돼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앞장서는 모습을 보인다.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측면도 있었겠지만 민심의 소리에 선조가 귀를 기울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7년 동안 지속된 임진왜란이 끝나자 선조는 전란으로 인한 피해 복구와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전력을 쏟는다. 그래서 스스로 음식과 의복을 절제하여 사치를 배격하는 한편, 농토를 개간하고 양식을 절약하는 정책을 실시해 민간경제를 바로 세우고자 하였다. 또한 민간의 사기를 돋우고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전란 중에 공을 세운 사람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공신을 녹훈하였다."-270쪽
선조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전쟁설을 퍼뜨려 민심을 혼란스럽게 할 필요가 없다`는 조정의 의견을 받아들여 성을 쌓는 일마저 중단시킨 것은 대표적 잘못이다. 선위사 오익령이 `다음해 일본이 쳐들어올 것`이라고 보고했지만 오히려 묵살하고 파직된 사례도 조선 조정의 무능력과 선조의 판단력 부족을 보여준다.
아쉬운 점은 책에선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보인 태도와 정치력에 대해선 평가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조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단연 `임진왜란`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이순신`이다. 그래선지 `선조`편에선 이순신에 대해서 상세히 소개돼 있다. 그중 원균과 비교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단적으로 말하면 용병술과 처세에서 이순신은 원균과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하여 상소하기를, 자신이 도와달라고 했는데 이순신이 도와주지 않아 적을 궤멸시킬 기회를 놓쳤다고 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순신이 원균에게 응원군을 보내주지 않은 것은 근본적으로 원균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원균은 자신의 군사를 너무 함부로 전장에 내보내는 경향이 있었다."-292쪽
저자인 박영규는 `한권으로 읽는 통사` 시리즈를 통해 한국사 대중화 바람을 일으켰다. 1996년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펴낸 이후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한권으로 읽는 고구려왕조실록` `한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 `한권으로 읽는 신라왕조실록`을 펴냈다.
그외 `세종대왕과 그의 인제들` `조선의 왕실과 외척` `환관과 궁녀` 등 역사서와 대하역사소설 `후삼국기(전5권)`, 서양철학사 `생각의 정복자들`과 같은 저서를 남겼다. (사진 = KBS 제공) [북데일리 김대홍 기자] paranthink@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