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과 `콜라보레이션`의 2006 출판계
`디테일`과 `콜라보레이션`의 2006 출판계
  • 북데일리
  • 승인 2006.01.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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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

“지금까지의 종이책 제작방식을 고수하면 e북(전자책)이 아니더라도 출판은 망한다. 사람들은 TV모니터에 익숙해져 있는데 책판형은 신국판 하나로 고정되다시피 했다. 새로운 상상력을 담보한 책으로 90%가 물갈이돼야 한다.”(2000년 5월 29일자. 동아일보)

6년 전 동아일보에 실렸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49)의 예견은 정확히 적중했다. 소설가 이문열씨와 ‘e북은 있다 vs e북은 없다’로 벌인 지면논쟁에서 출판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가면서도 ‘e북’의 한계와 `e콘텐츠`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언론사 출판담당 기자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에 시장의 동향을 답해주고 국내외 칼럼작업으로 24시간이 분주한 그이지만 단연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소 본연의 업무와 사업이다.

인터뷰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양의 책에 둘러싸인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한 소장은 신간종수가 30%가까이 늘어났지만 종당 평균 발행부수는 10%가 감소한 2005년 출판시장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2004년에 비해 30%나 증가한 반품을 보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종수가 늘어난데 비해 평균 발행부수는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악순환 되고 있는 출판시장의 ‘자전거식 조업’의 전형을 보여주죠. 반품을 받고 신간을 내고, 이런 악순환의 반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지금의 출판시장의 모습입니다.”

‘다산다사(多産多死)’ 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만큼 반품이 속출하는 출판시장. 반품곡선은 이제 U자에서 V자를 지나 I자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나오자마자 바로 돌아와 버리는 생명주기는 놀라울 정도로 짧아지고 있다.

그는 출판사 근무시절과 지금, 정보를 접하는 방식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한다.

“출판사에 다닐 때는 새벽5시에 출근해 모든 오프라인 신문을 다 검색했어요. 그때는 온라인이 없으니까. 스크랩할 것은 하고 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와서 다시 출근했죠. 그런데 지금은 전처럼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긴 하는데 오프라인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들어가 뉴스나 정보를 보기 시작하죠. 그러다 보니 서핑을 하다보면 출근시간이 늦어지죠. 정보를 접하는 방식이 그만큼 달라졌죠.”

그가 오래전부터 출판시장을 ‘키워드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시장이 끊임없는 ‘분할과 통합’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원 테마 원 키워드” 개념이 함께 언급된다. 잘게 쪼개져 가고 있는 시장을 향해 “100개의 차례는 한권의 책을 탄생 시킨다.”는 말을 적용시킨다. 세분화 되고 있는 시장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통합적 책읽기`라고 주장한다.

“설명하는 방식은 모든 지식을 동원한 ‘통합적’ 책읽기예요. 똑똑해진 대중들은 스스로 ‘편집’을 하고 있어요. 블로그가 대표적인 예죠. 자신의 글도 쓰지만 다른 글을 ‘스크랩’ 하는 편집행위에 이미 익숙해 가고 있죠.”

출판시장을 읽는 날카로운 견해는 ‘정보의 나이트클럽’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나이트클럽에 가면 대충 리듬을 느끼고 춤을 출 수는 있지만 실제로 흘러 나오는 노래의 가사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뜻을 포함한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는 이용자들은 나이트클럽에 가서 무드를 느끼듯 자료를 쉽게 읽고 소비하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지 못한다.

“분할과 통합을 거듭하는 출판시장을 주목하라”

‘팩션’ ‘아젠다’ ‘임파워먼트’ 등 새로운 개념으로 사고의 폭을 넓혀온 출판마케팅연구소의 소장답게 이번에는 2006년 출판시장을 향해 ‘디테일’이라는 단어를 던졌다.

“자신들 고유의 정보로 상상을 하게끔 만들어 주는 장치가 필요해요. <괴짜 경제학> <블링크> 등을 예로 든 것은 직관과 판단을 잘 할 수 있도록 섬세한 배려가 드러나기 때문이에요. 언뜻 봐서는 이질적인 정보들을 불규칙하게 던져놓은 것 같지만 조합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촉발시키고 있어요. 테마가 잘게 쪼개져가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그 안에서 지식은 통합적으로 설명해줘야 해요. 그것이 정말 중요하죠. ‘디테일’ 역시 그런 의미에서 중요해요. 섬세한 배려가 돋보이는 디테일, 그런 감동을 주지 못하는 책이라면 이제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죠.”

그는 일본출판잡지에도 칼럼을 연재중이다. 한국 출판시장의 동향을 명료하게 분석한 글은 일본 출판인들에게 오아시스처럼 신선하기만 하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정보들을 연결, 배치시키는 탁월한 능력은 단순한 데이터를 ‘Information(정보)’ 과정을 거쳐 ‘Intelligence(전략정보)’로 변환시킨다. 다년간의 노하우를 통해 생산되는 가치부가 정보 ‘Intelligence’. 출판마케팅연구소 역시 ‘Intelligence’에 주목한다.

“개인이 허허벌판에 서있는 시대예요. 그렇지만 능력 있는 사람들에겐 오히려 기회죠. 나이와 경력을 불문하고 아이디어나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은 초고속 승진에 새로운 기회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죠. 그들이 원하게 무엇이겠어요? 바로 ‘Intelligence(전략정보)’에요.”

출판시장의 새로운 개념 ‘디테일’을 설명하며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도솔. 2005),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리더스북. 2005)을 예로 든다. 다양한 죽음을 언급하는 <섭섭하게...>와 기구한 인생의 모습들을 담고 있는 <시골의사...> 가 보여주는 것이 한 소장이 말하는 ‘디테일’ 이다.

`디테일`과 함께 21세기 한국출판시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이종협력에 의한 성과)’ 이다. 서로 다른 이종 간 협업을 통한 성과를 뜻하는 단어로, 게임과 드라마, 영화가 책으로 돌아오고 있는 이유는 ‘스토리텔링’ 때문이다. 그는 15초짜리 광고나 영상도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스토리텔링’은 업종간의 결합을 가능케 하는,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하나의 업종만이 아닌 두개 이상의 업종이 엮여 수익성을 창출해내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문화산업 각 부문의 시너지효과를 위해 촉발된 콜라보레이션은 경제의 큰 흐름으로 이동하죠. 바로 그 중심이 ‘출판’ 이에요. 우리는 그 좌표를 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실제로 연구소에서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는 ‘신콜라보레이션시대의 출판’이라는 테마를 다루며 본격적인 논의의 장을 펼친 바 있다.

이어 한소장은 세계적인 북 디자이너인 일본의 ‘스기우라 고헤이’에 대해 언급했다. 한 소장은 세계 2대 타이포그래피 작가로도 불리는 그의 열혈팬이다. 국내 전시회 때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연구소가 준비하고 있는 그에 대한 특집 내용을 살짝 공개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를 넘어 사상가에 가까운 스기우라 고헤이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철학적 사유는 호흡을 짓누를 만큼 작품성의 무게감을 더한다.

한 소장은 멀리는 동아시아를 엮는 큰 기획을 꿈꾸고 있다. 자신만이 아닌 한국출판이 주도해 동아시아 전체 출판문화를 아우르는 작업을 추진하고자 한다.

국어교육학을 전공하고 창작과 비평사에서 15년간 영업을 담당하며 <동의보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그는 이제 출판시장의 ‘선두’에 서 주목받는 존재가 됐다. 연말, 연초가 되면 더욱 쉴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만 보더라도 출판시장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치를 새삼 확인 할 수 있다.

1998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설립한 그는 누구보다 책을 사랑하는 애서가다. 모두가 e북의 가능성에 대해 `장밋빛 청사진` 그렸을 때 종이책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책을 읽지 않고는 급변하는 시대에서 경쟁력을 갖출 방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읽기의 방대한 역사와 자료를 다룬 <읽는다는 것의 역사>의 출간을 준비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는 독서의 대중화를 외치는 수준을 넘어 독서행위를 철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더불어, 평생 책만 열심히 읽어온 사람들의 독서이야기도 출간기획 중이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대부분의 신간을 읽어야 하고 출판시장을 분석해야 하지만 마음이 진짜 원하는 것은 한적한 정자에 누워 `좋아하는 동양고전이나 깊이 있는 책을 음미하며 읽는 시간`이란다. 한국출판시장을 대표하는 석학답게 오늘도 그는 ‘책더미’에 묻혀 다시 펼쳐든 책에 눈을 돌린다.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올 한해 누구보다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출판인이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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