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흔 살이다
나는 아흔 살이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11.25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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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고 멋진 할머니... 삶의 의미를 묻다

 

[북데일리]<추천> “참 친절하기도 하지. 좋은 아가씨군요. 젊다니 얼마나 행운이에요.”
“그러게요.” “운이 좋으신 건 할머니이실 수도 있어요.”
“내가 어디가 운이 좋아요?”
“그렇잖아요―” “보내신 세월이 있으시잖아요. 그건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거고요.”
“그래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죠.” 348쪽

마가렛 로렌스의 <스톤 엔젤>( 2012. 삼화)의 한 부분이다. 소설의 대화처럼 젊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젊은 시절에는 알지 못한다.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서러움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고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삶을 미리 살아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아흔 살 헤이거의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소설은 아흔 살의 헤이거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다. 헤이거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지난 삶을 들려준다.

아버지의 반대를 뒤로 하고 사별하고 두 딸이 있는 남자 브램과 결혼을 선택하고 두 아들을 낳고 살아온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농장에서의 현실은 고달팠지만 자신의 결정이었기에 헤어기는 언제 어디서나 당당했다. 그러나 결국 막내 존을 데리고 남편을 떠나고 만다. 가정부를 하면서 존을 키우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아이들이 그렇듯 존은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브램의 죽음으로 농장으로 돌아온 존은 헤이거를 힘들게 한다. 반대하는 결혼을 하려고 한다. 헤이거가 아버지 뜻을 따르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남편 브램과 작은 아들 존을 먼저 보내고 큰 아들 내외와 살고 있는 헤이거는 아직은 양로원에 가고 싶지 않다. 아들 마빈과 며느리 도리스가 바라는 대로 해주고 싶지 않다. 내 집에서 내 돈으로 삶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헤이거는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늙었다. 양로원이 아닌 다른 곳을 선택한다. 수표를 들고 집을 나와 추억을 찾아 나선다. 헤이거는 그 여정에서 지난 생을 돌아본다. 사고로 죽은 존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마빈에 대해 더 너그럽게 대하지 못한 것을 생각한다. 같은 여자로 며느리 도리스를 이해한다. 지나온 삶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과 앞으로의 삶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다는 걸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내게는 내 인생에서 일어난 일을 바꿀 힘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좋아하거나 받아들이거나, 그게 최선이었다고 믿을 수도 없다. 나는 그렇게 못하겠고, 그 때문에 지옥에 가게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침대에 앉아서 어둠이 내려앉아 나무가 사라지고 바다가 밤에 삼켜질 때까지 창밖을 바라보기만 한다.’ 199쪽

생의 마지막을 향하는 순간에도 헤이거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그녀를 통해 우리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 돌아보고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아흔 살의 생을 당당하고 멋지게 그린 놀라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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