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도 노랗고 주변 풀들과 나뭇잎도 누렇게 변하고 있는 이때 그 빛이 더 환한 광명(光明)에 오니 참 좋습디다.”
작가다운 멘트였다. 986년 시(詩) '유리닦는 사람' 으로 등단한 성석제 작가. 그는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 음식, 여행, 과학 이야기 등 종횡무진, 박학다식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특히 ‘해학과 풍자, 혹은 과장과 익살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국면을 그려내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다양한 글의 소재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작가의 말.
"주변에 호기심 많은 친구가 여럿 있어서 만나면 경쟁적으로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글을 쓸 때 무의식중에 그 이야기들이 떠올라 씨앗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날 본 공연의 주제도서는 <칼과 황홀>(부제:성석제의 음식이야기)이었다. 이채로운 내용만큼 눈길을 끈 것은 다름안닌 책 제목이다. 이어진 성석제 작가의 답이 재미있다.
“칼은 부엌에서 없으면 안 되고 요리의 재료가 되는 생물을 자르고, 베고, 써는 도구다. 제목을 보고 칼로 음식을 만들어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고, 어느 순간 황홀함을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생각나는 대로 급하게 제목을 지었다. 나중에 바꾸고 싶었는데, 출판사에서 이대로가 좋다며 바꾸지 않았다.“
두 번째 주제도서인 <위풍당당>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진중한 이야기를 코믹하게 전개한 책이다. 소설의 주 무대는 ‘강’과 드라마를 찍은 후 버려진 ‘세트장’. 저자는 전국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폐허 속에서도 새로운 것이 싹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소설 속 한 대목을 들려줬다.
“세트장이 지어지고 난 뒤 반년 만에 사극 촬영이 끝나면서 찾아오는 관광객은 급감했다. 세상 어디선가 다른 사극 다른 드라마 다른 영화가 촬영되고 또 방영되고 있었으니 돈과 호기심, 인생의 길이가 제한되어 있는 관광객 입장에서는 그런 곳을 찾아가는 편이 더 경제적이었을 것이다. 결국 세트장은 썩지 않는, 곧 불후(不朽)의 폐허로 변했다.
수십 채의 초가집이 있었지만 무너진 건 없었다. 플라스틱, 스티로폼, 우레탄, 시멘트, 값싼 목재로 만들고 페인트와 스프레이 등으로 흉내만 냈기 때문에, 버림받고 찾는 이 없어 썩고 싶다 한들 썩지를 않았다."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읽고 팬이 됐다는 중년의 여성 독자부터 열심히 메모하며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학생들까지, 북콘서트는 시종일관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됐다. 올 연말쯤 출간 계획으로 집필중이라는 그의 새 책이 기다려진다.
북콘서트 공연문의 : 02-323-1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