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거리는 가깝나요?
나와 당신의 거리는 가깝나요?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10.11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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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입양아를 소재로 심연을 말하다

[북데일리] 일상을 공유하고 모든 감정을 나눠도 타인과의 거리는 존재한다. 거리를 좁히는 일은 어쩌면 상대방을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그리워하고, 더 많이 사랑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입양아가 자신의 친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2012.자음과모음)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입양아 카밀라는 양모의 죽음으로 자신에게 남겨진 물건에서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한다. 소설가가 된 카밀라는 사진을 단서로 자신이 태어난 곳, 진남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현재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그 시작의 시간들을 찾는 여정은 아프고 고단하다. 열 일곱 미혼모로 아이를 낳고 바다에 투신한 엄마를 기억하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시절의 진남을 기억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선소의 화재, 투쟁, 무참하게 버려진 노동자의 삶, 누군가의 죽음, 무관심을 떠올리는 고통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카밀라의 존재가 엄마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소설은 카밀라의 이야기에 이어 엄마 지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의 생이 다른 생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천천히 보여준다. 그러니까 1980년대 엄마 지은의 삶이 어떻게 2012년 현재 카밀라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지 말이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지은은 조선소에서 일하던 아빠의 죽음을 목격한다. 아빠를 죽게 만든 세상을 증오한다. 누구도 지은을 위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문학이 여고생 지은의 마음을 열게 만들었다. 지은이 문집에 남긴 글을 통해 카밀라는 자신의 한국 이름이 희재라는 걸 알게 된다. 지은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는지 말이다.
 
 누군가는 이 소설에 대해 입양아의 뿌리 찾기인 진부한 소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당신과 나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나를 둘러싼 사람들, 당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단순하게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가 아니라, 수많은 나와 당신의 거리에 대해서. 그 거리라는 것은 관심일 수 있고, 사랑일 수 있고, 미움이나 증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 당신의 의미없는 몸짓이 누군가의 인생을 무너뜨리거나 지켜줄 수 있는 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연수가 말한 우연이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과거의 점들이 모두 드러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점들을 밝고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인생은 지금보다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201~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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