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야 할 사람 증오하는 마음
사랑해야 할 사람 증오하는 마음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9.26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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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티블루>의 원작작가 작품

[북데일리]사람들은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안다고 말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건 결단코 알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고통의 당사자가 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날카로운 못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일, 가시가 되는 말을 들어야 하는 일, 냉소가 담긴 시선을 받아야 하는 일들이 그렇다. 소설 <나쁜 것들>(2012.문학동네)은 이처럼 고통과 동거하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을 증오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절망을 보여준다.

한 때 유명했던 소설가로 두 딸과 아내와 행복했던 남자, 프랑시스가 있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상처를 입은 아내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시기를 놓치고 아내와 큰 딸이 사고로 죽는 걸 목격한다. 둘째 딸 알리스와 함께 말이다. 그 후로 남겨진 부녀의 삶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게 전부다. 약물에 의지해서 사는 딸, 무기력한 일상을 이어가는 아버지는 서로를 할퀴며 살아간다. 알리스는 친구였던 로제와 프랑시스는 부동산 업자인 쥐디트와 결혼한다. 어쩌면 부녀에게 결혼은 새로운 삶을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여배우 알리스는 쌍둥이 엄마가 되고서도 여전히 늙은 아버지를 괴롭힌다. 어느 날 알리스가 실종된다. 프랑시스는 옛 친구이자 탐정인 안 마르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그녀에겐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다녀온 아들 제레미가 있었다. 딸의 실종에도 불구하고 프랑시스는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고 제레미에게 조사를 맡긴다. 실종이 딸의 의도로 확인되고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는다. 안 마르와 제레미의 관계도 그렇다. 암에 걸린 어머니를 방치하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서로에게 고통을 준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그들에게 용서와 명분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증오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생의 목적인 양 서로를 할퀸다.

그들에겐 자신만의 도피처가 필요했다. 알리스는 연기가, 프랑시스는 소설을 쓰는 일, 제레미은 개를 키우는 일이 그렇다. 딸과 아버지의 관계, 남편과 아내의 관계, 어머니와 아들이란 관계는 멈추고 만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잔인하면서 슬프다. 각 자의 상처를 꺼내거나 약을 바르거나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두고 다른 상처를 낸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이다. 그 존재가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타인의 고통과 관련해서는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들에게 초래한 피해 상황을 확인한 후에야 놀라서 얼이 빠지고 기겁을 한다. 길거리 싸움판에서 멋모르고 휘두른 주먹 한 방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일처럼. 나는 결국 내가 그녀에게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서 받은 고통을 몇십배로 되갚아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걸 다 갚으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는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108~ 109쪽

작가는 애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애도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은 아닐까. 용서가 그렇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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