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임금 광해가 수라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밥상을 받을 때마다 독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왕의 불안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누군가 그를 죽이려 한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데 정치가 눈에 들어올 이가 있겠는가. 날로 난폭해지는 왕을 지켜보는 허균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허균은 임금과 닮은 광대 하선을 찾아 그를 왕의 자리에 앉힌다. 광해의 건강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가짜 임금이 된 하선은 모든 게 낯설고 무섭지만 그 역할을 하면서 궁을 파악한다. 궁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임금 한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데 놀란다. 더불어 한 나라를 책임지는 임금의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는다. 그리하여 점점 하선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 싶어진다. 진짜 임금이 되어 백성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다.
광해의 움직임을 살피던 반대 세력은 하선을 정체를 알게 된다. 궁으로 돌아올 광해도 하선을 죽일 생각이다. 이제 하선에게는 죽음만이 남은 것이다. 책은 재미있다. 광해라는 인물에 대한 두 가지 모습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보필하는 이들을 배려하고 다정하게 감싸는 광해, 살아남기 위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광해의 모습을 말이다. 어쩌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그의 진짜 모습은 전자일지도 모른다.
꾸며낸 이야기가 맞지만 정치에 대한 하선의 말은 지나칠 수 없다. 누구를 위한 정치인지, 누구를 위한 삶인지 이 시대를 사는 정치인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조선의 백성이나,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바라는 건 모두 같으니까.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과인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대신들의 이러한 태도가 문제란 말입니다. 이것 때문에 어렵겠습니다. 저것 때문에 어렵겠습니다.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려 하니 제대로 일이 풀리겠소? 밖을 보시오. 조정이 아닌 백성들의 삶을 보시오. 뜨뜻미지근하게 우리가 여기서 입방아를 떨고 있을 이 시간에도 백성들은 스스로 노비가 되고 기생이 되는 판입니다. 그깟 지주들 쌀 한 섬 때문에 차별을 운운하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1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