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엔 '나무를 사랑한 왕들' 흔적이...
창덕궁엔 '나무를 사랑한 왕들' 흔적이...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2.09.13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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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적인 시각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건축

[북데일리] 창덕궁은 조선왕조 500년의 건축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세계의 문화유산이다. <창덕궁 깊이 읽기>(2012.글항아리)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외 10명의 전문가가 함께 참여한 서적이다.

책은 조선을 대표하는 궁궐인 창덕궁을 심층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창덕궁에 얽힌 역사부터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과 조경, 그리고 회화와 공예, 음악과 풍수, 식생까지 다룬다. 명실상부 조선왕조의 문화 집결지인 창덕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궁궐탐구서다.

특히 곳곳에 배치된 그림과 시가 어우러져 읽는 데 지루함을 덜어주고 궁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아 어려움을 덜어냈다. 또한 왕과 관련 된 소소한 일화를 창덕궁 나무에 녹여 재미를 더한다.

책에 따르면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이 시 쓰기를 즐겨하는 왕이었다. 버들잎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여러 수의 시를 썼다고 한다. 또한 단풍나무도 좋아했는데 직접 단풍 시를 짓기도 하고 신하들에게 시를 지어 올리라고 할 정도였다. 이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태조 이성계에 관한 내용도 함께 전했다.

‘태조 이성계는 배나무와 인연이 많았다. 무학대사 토굴이 있던 곳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석왕사라 했으며 그곳에 배나무를 손수 심었다. 전북 진안 마이산 은수사에 있는 청실배나무는 명산인 마이산을 찾아와 기도를 마친 뒤 그 증표로 심었다고 한다.’ -244쪽

창덕궁은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만큼 역사상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궁궐이기도 하다. 책은 1900년부터 1920년 사이 조선 왕실을 장식했던 그림을 살핀다. 이를 통해 바라보는 역사의 깊이도 결코 가볍지 않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조선 왕실을 관리하기 위해 일본 화가들을 활용했다. 이미 도화서가 사라진 후라 특별한 대안도 없었다. 왕실의 장식화가 점차 일본의 화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책은 당시 고종의 어진도 일본화가가 그리게 되었다고 밝혔다. 고종은 이에 불만을 표했지만 왕실은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이이 반해 1920년 조선 왕조의 마지막 대규모 궁궐장식화 제작 작업은 순수 조선 화가들에게 맡겨졌다. 바로 조선 왕실의 의도가 반영된 것. 이처럼 <창덕궁 깊이 읽기>는 건축뿐만 아니라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인 조명으로 창덕궁을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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