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며낸 이야기의 생생한 공포
꾸며낸 이야기의 생생한 공포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9.03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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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일러스트로 섬뜩함 강조

[북데일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변형된다. 소문이 그렇고, 신화나 전설이 그렇다. 맨 처음 시작된 진실을 확인 할 수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모던 아랑전>(2012.노블마인)이 그런 책이다. 책은 기존의 아랑 전설, 금도끼 은도끼, 심청전, 할미꽃, 토끼전, 해와 달이 아닌 새로운 전설을 탄생시켰다. 

매혹적인 일러스트와 함께 섬뜩하고 기묘한 이야기다. 꾸며낸 이야기이라 생각할 수 없는 생생한 공포가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도끼를 연못에 빠뜨린 정직한 나무꾼의 이야기인 금도끼 은도끼의 현대판 이야기 <스미스의 바다를 헤맨 남자>, 자식을 보러 오다 꽃이 되었다는 할미꽃의 슬픈 사연을 그대로 담은 <오래된 전화>이 인상적이다.

<스미스의 바다를 헤맨 남자>속 주인공인 나는 사업의 부도를 막기 위해 외삼촌의 유산을 팔기로 한다. 혈연단신인 자신을 거두고 사업을 물려준 외삼촌이 남긴 유산은 자루가 없는 도끼였다. 친구가 소개해 준 노사장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길을 나선다. 노사장의 별장을 가는 길에 편백나무 숲에서 도끼를 잃어버리고 만다. 돈을 빌릴 수 없다는 절망감에 돌탑에 돌을 쌓고 물건을 찾아 달라고 빌면서 속상함에 통곡한다. 열심히 살았지만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었다. 부모를 잃고 어떻게 든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원하던 꿈을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꿈을 꾸고 싶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꿈을 꾸기 시작하면 삶을 놔야 해. 안 그러고 싶어도 그렇게 된다. 피곤해지니까. 네가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하면 현실에서 네 자리는 없어지는 거야.” p. 114

꿈을 꾸기 시작하면 삶을 놔야 한다니, 이 얼마나 섬뜩하고 잔인한 말인가. 타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오래된 전화>는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엄마의 전화를 받고 길을 나선 이야기다. 엄마의 부재로 인해 받은 상처로 인해 그녀는 엄마를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 오빠들도 죽기 전에 한 번 보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지만 무시한다. 뒤늦게 엄마를 찾았지만 이미 죽은 후였다. 자식을 버리고 떠난 엄마, 늙고 병든 부모를 찾지 않는 자식, 누가 더 잘못한 걸까.

<모던 아랑전>에는 윤리와 도덕이 사라진 사회가 있었다. 그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있었다. 때로 잔인한 모습으로 때로 비참한 모습으로 욕망을 좇고 있는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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