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이 탐정이라고?
시인 이상이 탐정이라고?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8.10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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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틀 위에 유쾌한 상상

[북데일리] <경성 탐정 이상>(2012. 시공사).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픽션이라, 과연 어떨까. 단순하게 그 호기심으로 선택한 책이다. 그러니까 김재희라는 작가보다는 시인 이상과 소설가 구보라는 등장인물의 힘이 그만큼 컸다는 거다. 시인과 소설가의 조합,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그들이 실존했던 시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책을 읽어도 좋겠다.

책은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범죄 사건을 이상과 구보가 해결하는 연작 소설이다. 천재 시인이라 불리는 이상과 소설가 구보는 구인회 염상섭의 제안으로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순수한 문학단체로 알고 있었던 구인회가 형사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해결하고 있었다는 설정도 기발하다. 정말 그 시대, 그런 일들이 벌어졌을지 누가 알겠는가.

모두 7개의 사건이 등장하는데 이상과 구보가 맡은 첫 번째 임무는 벚꽃이 가득했던 창경궁의 밤 사슬에 묶여 죽은 모던 걸 사건이다.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탐문 조사를 하던 차에 그들은 죽음에 영국 낭만파 시인 셸리의 시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가 중요 단서임을 밝힌다. 문학을 꿈꾸던 젊은이들의 열정과 질투가 한 여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그 시대에도 남녀 간의 사랑과 배신은 잔혹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나머지 6개의 사건도 흥미롭다. 실존 인물인 간송전형필, 조선 후기 화가 최북, 나비 박사 석주명, 어쩌면 살아 있다고 믿고 싶은 명성황후 등이 등장하여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사건마다 1930년대 경성의 모든 풍물을 빼놓지 않고 소개한다. 하여 그들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고 그 시대를 경험하는 묘미를 안겨준다. 매 사건은 하나의 공통점으로 이어지는데 그 배경에 일본이 있다는 점이다. 1930년대 일본을 빼놓을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사건으로 이상의 기이한 죽음을 밝히려는 일본으로 떠나는 구보의 행보는 극도의 긴장을 몰고 온다.

사건을 해결하는 이가 이상과 구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상의 연인 금홍과 구보의 아내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낭만과 방탕한 생활을 하는 이상과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 구보를 은근 슬쩍 비교하고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다방에 마주 앉아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며 커피를 마시는 이상과 구보를 그려본다. 마치 살아 있는 이상과 구보를 만난 듯한 기억이 오래 남을 것 같다. 남은 더위를 날려줄 책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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